이는 중요한 방향 전환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때 유효한 것인데 아직 그런 신호가 없다”고 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슨 ‘신호’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벌써 ‘대북 뒷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야당은 “선거를 겨냥한 신(新) 북풍 공작”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국민은 DJ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해 3월 베를린 선언을 통해 대규모 경제지원을 북에 제의했고, 5억 달러의 뒷돈까지 줬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DJ는 그 대가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남남 갈등만 심화됐다. 그런데도 다시 같은 방식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국민을 이 정권의 ‘북풍 흥행’에 뒷돈 대는 ‘봉’쯤으로 보지 않는 한 상상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더욱이 “무슨 내용이든 논의할 수 있다”는 대목은 6·15 공동선언에 담긴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당시 DJ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공통점이 있다”며 제시한 ‘남북연합제’도 DJ의 개인적인 ‘3단계 통일방안’의 두 번째 단계일 뿐이다. 정치권에선 ‘DJ 방북으로 연방제 논의를 점화한 뒤 남북 정상회담과 개헌을 통해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닦으려 한다’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이 불안해할 수 있는 여러 사정이 있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용’이라고 주장해 온 북의 주장에 사실상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기저를 흔든 셈이니 후(後) 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정말 걱정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대북 압박을 중단하라는 신호로 읽힐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은 과연 한미동맹이 유지되기를 바라고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이러니 평택 사태가 일어나고 군인들이 시위대에 두들겨 맞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대북정책이 ‘민족 우선’으로 포장된 정파적 이익의 도구로 사용돼선 안 된다. 그 재앙을 알면서도 노 대통령이 유혹에 빠지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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