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듯 눈이 충혈돼 있었다. 옆 자리에 있는 딸 영자(48) 씨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정시키려 했다.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73) 씨가 아들 요코타 데쓰야(橫田哲也·37) 씨와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崔成龍·54) 대표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섰다. 검은색 정장에 백발을 가지런히 빗어 넘긴 그의 얼굴 역시 붉게 상기돼 있었다.
요코타 씨는 잰 걸음으로 단상 위에 오른 뒤 최 씨의 손을 잡았다. 아들과 딸을 잃고 생사도 모른 채 27, 28년을 보낸 두 사돈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16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2층 대회의실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메구미와 영남 씨가 1977년과 1978년 각각 북한으로 납치된 뒤 1987년 결혼을 하는 바람에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사돈 지간이 됐다.
요코타 씨는 최 씨 모녀에게 "만나서 반갑다"면서 "북한에 끌려간 뒤 지옥 같은 삶을 살았을 딸아이에게 영남 씨가 희망이 돼준 것에 대해 가족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영남 씨와 딸 혜경 양이 북한 정부로부터 감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슬프지만 아직도 두 사람이 건강하다는 뜻이어서 다행스럽고 하루빨리 최 씨 품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몸이 아파 한국에 함께 오지 못한 부인도 사돈을 무척 보고 싶어 한다"며 "28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개최되는 납북자 송환촉구모임인 '일본국민대책회의'에 함께 참석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남 씨의 누나인 영자 씨는 "직접 만나보니 정말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두 가족이 사돈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힘을 합치면 무사히 송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씨 모녀는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찻잔과 편지를 건넸다. 요코타 씨도 납치피해 마크가 새겨진 장식품으로 답례했다.
두 가족의 만난 뒤 한·일 납북피해자단체들은 같은 장소에서 납북자 송환 및 가족상봉대회를 열었다.
두 단체는 "북한 김정일 정권은 한국의 김영남과 일본 요코다 메구미 양을 비롯한 수많은 납북자를 조건 없이 송환하고 납치 피해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한일 납북자 가족과 NGO 단체는 북한 정권의 폭압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김정일 정권에 의해 자행된 납치 피해자의 조건 없는 송환을 위한 국제연대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앞서 요코타 씨 가족과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가족 연락회' 마쓰모토 테루아키(增元照明) 사무국장, 납치피해자 가족인 히라노 후미코(平野 富美子) 씨는 납북자가족협의회와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요코타 씨 일행은 납북자 송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달기 행사'와 '10만 납북피해자를 가족의 품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풍선날리기 행사를 가졌다.
요코타 씨 등은 17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방문한 뒤 같은 날 오후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