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D-14]선거판 아직도…“몰표 줄게 건물 지어주오”

  • 입력 2006년 5월 17일 03시 02분


《경기도지사 후보들은 얼마 전 ‘경기도 노총 장학문화재단 장학금 300억 원 조성’을 요구하는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의 정책질의서를 받았다. 한 후보 측은 “경기도 인구가 1100만 명인데 한국노총의 경기지역 회원 16만 명을 위해 장학금 300억 원을 내놓는 식으로 돈을 쓰면 예산이 남아나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후보 측 관계자도 “액수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는 이에 대해 “현재 장학기금 100억 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자율이 떨어져 현상유지를 하려면 200억 원, 장학금을 늘리려면 300억 원이 필요하다”며 “노조가 수입원을 갖기가 쉽지 않아 도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리한 공약 제안=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공약 제안이 후보 진영에 봇물 터지듯 밀려들고 있다. 이들 제안 가운데 실현이 불가능하거나 집단이기주의적인 민원성 요구가 적지 않아 후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장애인단체는 도지사 후보에게 “장애인 수당을 일괄적으로 9만 원씩 올려 달라”고 요구했고, 지역의 중소기업들로 이뤄진 한 연합회는 “기업에 대한 지원 펀드를 현행 9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후보에게 권한을 양보할 것을 채근하는 질의도 있다.

이달 초 지방의 한 공무원노동조합은 ‘후보께서 만약 도지사가 된다면 도청 내 인사는 어떻게 운영하시겠습니까?’라는 내용의 공개질의서를 냈다. 이 노조는 ①번 ‘인사권 범위에서 알아서 하겠다’, ②번 ‘인사 전횡이 되지 않도록 노조와 협의하여 개선해 나가겠다’, ③번 ‘취임 후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 항목을 달았다.

이 질의서를 받은 각 후보 측 관계자들은 “노조가 인사권을 침해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노조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 ②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후보들 울며 겨자 먹기=이렇듯 각 광역단체장 후보 진영의 정책팀은 팩스, e메일로 밀려드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약제안서, 질의서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대표적 민원성 공약은 센터 건립 요구다. 한 도지사 후보의 정책팀장은 “여성, 장애인, 실업자, 청소년 등 각 단체의 센터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 요구를 모두 들어 주면 예산이 거덜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한 도지사 후보는 “무리한 공약을 요구하는 단체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비난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약을 검증하는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운동을 벌이는 시민사회단체도 많지만 집단이기주의적인 단체들의 이 같은 무리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현행 선거법으론 후보에게 무리한 공약을 요구하는 행위를 단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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