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4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첫날 회의에서 남측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해상경계선 협의를 비롯한 8개 군사 분야 합의사항을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다루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비록 NLL을 존중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남측의 이번 제안은 NLL을 비롯한 해상경계선 문제의 경우 남북 간에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을 이룬 뒤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와 같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협의할 수 있다는 기존의 태도에서 크게 양보한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8개 군사 분야 합의사항은 △무력 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충돌 방지 △해상불가침경계선 계속 협의 △군사 직통전화 설치 운영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 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무기 제거 △단계적 군축 실현이다.
남측은 특히 이날 회담에서 북측이 해상경계선 문제와 관련해 서해 5개 섬의 남측 주권을 인정하고 섬 주변의 관할수역 설정에 대해 2000년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보다 다소 완화된 수정안을 제의한 것을 ‘긍정적 신호’로 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의 수정안이 NLL과 유사한 점이 있다”며 “수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17일의 2일차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북측이 남측의 제의를 수용해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린다면 정전협정 체결 이후 53년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온 NLL의 재설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측 회담 차석대표인 문성묵 국방부 북한정책팀장(육군 대령)은 “서해상 충돌 방지와 평화 정착을 위해 NLL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각종 군사 현안의 포괄적 협의를 북측에 전달한 것”이라며 “17일 회의에서 북측이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남측의 이번 제안은 ‘NLL 고수’ 방침을 유지하면서도 북측에 대해 협의에 응할 수 있도록 명분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9일 몽골 울란바토르의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해 조건 없는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하겠다”며 대북 지원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번 남측 제의의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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