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에 ‘마지막 기회’ 메시지…‘리비아 모델’ 제시

  • 입력 2006년 5월 17일 03시 03분


미국이 15일 리비아와 26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전면 복원하고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기로 한 배경을 놓고 크게 두 갈래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풀이가 많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에서 “리비아가 북한과 이란의 ‘중요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리비아가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전격 선언하고 실제로 WMD 해체를 실천해 나갈 때부터 미-리비아 관계의 전면 복원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미국은 이듬해 2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이를 연락사무소로 격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외교관계 전면 복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따리는 풀지 않았다. 미 국무부의 4월 연례보고서에서도 리비아는 여전히 ‘테러지원국’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가 리비아보다는 북한과 이란을 겨냥한 게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메시지다. 전문가들은 ‘최후통첩성 경고’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이란을 향해 ‘리비아 모델’이 가진 인센티브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도 분명히 해두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 두 나라가 핵 개발 문제를 ‘리비아의 WMD 선례’에 따라 처리한다면 궁극적으로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른 각종 제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향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라이스 장관은 2004년 8월 한국 방문 때도 “먼저 핵을 포기하면 북한은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한지 보고 놀랄 것”이라고 밝혔다. 리비아에 개설한 이익대표부를 연락사무소로 격상시킨 직후였다.

미국의 ‘종용’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도 WMD 포기 직후부터 북한을 향해 “리비아 방식을 따르라”고 촉구했다. 그는 2005년 1월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을 면담할 때도 ‘리비아식 해법’의 유용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마디로 이를 일축해 왔다. 한성렬(韓成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04년 4월 “북한은 이미 핵 억지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리비아식 방안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리비아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해야 하고 북-미 양자협상을 먼저 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리비아식 방안을 북-미 관계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북한엔 리비아처럼 석유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리비아는 세계 9위의 원유 매장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1986년 이후 미국의 경제제재로 첨단 탐사 및 시추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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