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 인사권의 위력이 확인되면서 “4년간 편하려면 선거 때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학습 효과가 생긴 탓이라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눈치 보기, 보험 들기, 양다리 걸치기…=전현직 시장이 맞붙은 전남의 한 시에서는 공무원 사이에 ‘모 후보가 당선되면 적어도 300명은 인사 조치될 것’, ‘누구누구는 이미 비서실장, 인사계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공무원 A 씨는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가 힘든 실정이지만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현직 구청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부산의 일부 구 지역에서 공무원 간에 편 가르기가 성행하고 있다. 공무원 B 씨는 “간부들은 무소속으로 나온 현직 구청장과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후보 양쪽을 모두 무시할 수 없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현직 도지사가 출마를 포기한 전북에서는 간부급 공무원들이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연고를 파악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시 지역에선 “모 간부가 유력 후보 선거기획단의 사설 모임과 비선조직 회동에 참석한 것을 봤다”는 등의 얘기도 흘러나왔다. 간부급 공무원 C 씨는 “얼마 전 유력 후보의 캠프로부터 ‘말조심 하라’는 경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며 “공무원들의 발언이 후보 진영에 일일이 보고된다는 방증”이라며 씁쓸해 했다.
▽벌써부터 ‘시장님’ 대접=19일 오후 4시경 영남 지역의 한 시청 청사. 국장 과장 등 간부들이 업무를 제쳐둔 채 청사 현관에 모여 30분 넘게 서성댔다. 선거운동에 바쁜 현직 시장이 짬을 내어 청사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시장이 일정을 바꿔 청사에 들르지 않자 멋쩍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경남의 한 고교 동문회가 정식 후보등록 전인 14일 한 시에서 주최한 체육대회엔 해당 시 공무원들이 대거 나와 예비후보로 직무가 정지됐지만 재선이 확실시되는 현직 시장 수행에 열을 올렸다. 일부 공무원은 참석자들에게 시장을 안내하면서 “우리 시장님”을 외치기도 했다.
대구의 한 구청장 선거에선 역시 재선이 유력한 현직 구청장 후보가 유권자들과 만날 때 구청의 국장과 동장들이 수시로 동석해 경쟁 후보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다른 후보의 시선을 의식해 표 나지 않게 친지를 유력 후보 캠프에 ‘파견’하는 신종 줄 대기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대전시장 선거에 출마한 모 후보 관계자는 “여성 자원봉사자에게 ‘어떻게 선거운동을 도울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시청 모 과장의 부탁으로 대신 나왔다고 하더라”며 “이런 방식은 선거법에 걸리지 않고 성의를 표시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적발=경북의 한 시 지역에서는 공무원이 교회에서 단체장 입후보 예정자와 부인을 신도들에게 소개하면서 지지를 부탁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됐다. 또 공무원이 공개석상에서 현직 단체장 지지 발언을 하다 선관위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
광주의 한 공무원은 동료와 함께 현직 시장의 선거운동을 위해 ‘2030세대 지지층 확보를 위한 영·유아 독서 잔치 행사’라는 13쪽짜리 문건을 만들고 이를 상사에게 보고했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전남과 전북 지역에서는 일부 공무원들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입당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대전=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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