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보다 더 근원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 구상은 처음부터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었고, 북한 체제에 ‘정치적 지진해일(쓰나미)’을 안겨 줄 수도 있는 제안이었다.
남북한 관통 열차 여행은 원래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구상한 일이었다. 특히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특사로 나서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자 김 주석은 ‘역사적인 서울 열차 답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김영삼 대통령이 7월 25일 평양을 방문해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까지만 합의됐지만, 김 주석은 서울 답방까지 생각하고 준비작업을 시켰다는 것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당시 김일성은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하더라도 무조건 가겠다고 했을 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대남사업을 총괄했던 김정일이 경호를 이유로 말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둔 7월 8일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갔지만, 김 주석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북한 교통부장(장관)에게 경의선 연결 공사 현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당시 교통부장은 김 주석에게 “군을 동원해 가교를 건설하고 (북한 쪽의) 강원도에 있는 유휴 레일을 급히 옮겨 오면 빠른 시일 내에 남북 철도를 충분히 연결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는 게 북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 주석이 사망한 뒤 북한은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김 주석은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것으로 민족의 혈맥을 잇고자 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 주석이 경의선 철도 문제를 언급하며 마지막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도 이례적으로 방영됐다.
김 주석의 마지막 서명도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된 문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명은 북한 판문점 통일각 앞의 큰 비석에 새겨져 생전에 이루지 못한 김 주석의 ‘천추의 한’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석엔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 서명이 새겨져 있다.
북한으로 볼 때 경의선 연결은 이렇듯 김 주석의 ‘유훈(遺訓)’과 직결된, 수십억 달러와도 바꿀 수 없는 큰 정치적 상징과 명분을 가진다. 김 전 대통령에게 넘겨주기엔 너무나 큰 선물이다.
더구나 북한이 그토록 선전해 온 ‘민족의 혈맥’을 남측 인사가 연결했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진다면 통일의 주도권이 남한에 있다는 인상까지 심어주게 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北 속내 못읽고 서두르다 ‘헛발’▼
한국철도공사는 바지선과 대형 트레일러 등을 동원해 동해선 남측 구간의 선로 점검에 사용될 새마을호 기관차와 객차 4량, 발전차 1량을 23일 동해선 제진역까지 옮겨 놓았다. 그러나 북한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둘러 옮기는 바람에 헛수고를 하게 됐다.
▽“실무라인만 믿은 게 실수”=북한은 13일 제12차 남북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하면서도 군부의 군사보장조치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당시 실무접촉에 참가한 북측 인사들은 모두 군부가 아닌 내각의 대남정책 담당자들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분위기로만 북측 군부가 군사보장조치에 동의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지 실제 군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16∼18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4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북측은 군사보장조치 논의는 군사 실무회담에서 하자며 발을 뺐다.
그런데도 정부는 열차 시험운행 성사를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측 당국이 북측의 실무접촉 라인을 너무 믿은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내부 구조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의 주장과 이에 엇갈리는 주장이 동시에 나올 경우 군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송영선 제2정조위원장은 “2004년과 2005년에도 군사보장합의서가 체결되지 않아 시험운행이 무산됐는데도 이번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것은 정부의 허술한 대북정책을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험운행 취소는 더 얻기 위한 수단”=정부는 이번 시험운행 취소가 남측과의 급속한 관계 개선에 부담을 갖는 군부의 반발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군부와는 달리 북한 노동당과 내각에서는 계속 시험운행 추진에 찬성했다는 것.
북한을 방문했던 한 인사는 북측 관계자에게서 “북한을 간단히 보지 말라. 김정일 지도자도 대주주일 뿐이다.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주주(군부)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포함한 북측 수뇌부가 남측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군부의 반발’을 핑계로 열차 시험운행을 무산시켰다는 분석도 많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측 군부 입장에서 개성공단도 허용한 상황에서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조치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북측이 시험운행 카드를 좀 더 ‘유용하게’ 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북측이 경제난을 풀어 나가는 데 남측의 지원보다는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중국의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면서 남측과의 합의를 가볍게 여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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