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후의 총선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오직 거대한 분노가 ‘쓰나미(지진해일)’처럼 몰려와 모든걸 한꺼번에 쓸어 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 통에 공약도, 인물도 다 쓸려 가 버렸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 총선에서 반한나라당·반민주당 쓰나미가 휩쓸었다면,이번에는 반노무현·반열린우리당 쓰나미가 덮쳤다는 점이지만 그 강도와 사나움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과연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격렬한 민심 변화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가. 성경을 보면 바로 그런 경우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를 부르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반겼던 사람들이 정확하게 사흘 뒤 로마 총독인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라”며 매정하게 예수의 처형을 외친 것이다. 이번 선거를 그런 극적인 변화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2년 만에 거꾸로 바뀐 민심은 가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거대한 민심 이반에 원인이 없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평소에 노무현 정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해 온 정나미 떨어지는 말과 행동, 정책들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이번 선거에서 엄청난 쓰나미가 된 것은 이른바 ‘나비효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비효과란 중국 베이징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오는 경우를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정권에화난 사람들, 마음의 응어리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대선과 총선 때 잘못 찍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
생각해 보면 소수 정권의 비애를 곱씹던 정부 여당은 총선에서 승리한 후 항상 거치적거리던 거대 야당이라는 장애물이 없어져 본격적으로 개혁을 할 수 있는 정권이 되었다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러나 그런 승리가 불과 2년 만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
는 다나오의 딸들처럼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은’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기막힌 역설인가.
노 정권은 그동안 일과 정책을 추구할 때마다 사람들을 두 편으로 가르면서 자신의 편은 편애하고 반대자들을 냉소하며 윽박질렀으나, 그렇다고 기념비적인 정권의 업적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이명박의 청계천은 있지만, 이 정권의 청계천이 있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폄훼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라도 만든 적이 있는가. 오직 영양가 없는 국정홍보처의 활약만이 요란하고 눈부실 뿐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이토록 발끈한 정부도 없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면 오보니 뭐니 하면서 꼬박꼬박 반론권을 청구하여 비판자들을 주눅 들게 한다. 아마추어는 많은데 프로는 적고 로드맵은 많은데 생산성은 적으며, 회한과 불만은 많은데 포용력과 톨레랑스(관용)는 적고, 정작 말은 많은데 실천은 적은 것이 이 정권의 특징이다.
그동안 은인자중하며 참고 살던 사람들은 이참에 이런 정권과는 ‘고단함’은 함께할 수 있을지언정 ‘안락함’은 같이 누릴 수없다고 표로 봉기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최대 다수의 행복’이나 ‘안락’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안’을 산출한 정권이라는 낙인을 집단적으로 찍기로 작정한것일까.
이번 선거는 불문곡직하고 다음과 같은 일련의 물음을 두고 진행된 국민투표와 같았다. “3년 전에 비해 편안해졌습니까.”
“3년 전에 비해 세금이 가벼워졌습니까.” “3년 전에 비해 먹고사는 문제가 개선되었습니까.”“3년 전에 비해 행복해졌습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가차없이 세금이 무거워지고 살림살이가 개선된 것이 없으며 삶이 고단해졌다고 대답한 것이다. 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왜 깨느냐고 성토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열린우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압승을 이것 말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연 이 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프란츠 카프카의 명작인 ‘심판’을 보면 요제프 K는 30번째 생일날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죄를 면해 보고자 변호사도 찾아가고 타이피스트도 만나는 등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결국 갑작스럽게 처형되는 운명을 맞는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동분서주하며 바쁘게는 움직였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 말고 다른 엉뚱한 일만 했기 때문이다.
죄를 인정하고 ‘내 탓’을 고백했더라면, 처형과 심판은 없었을는지 모른다. 지금 정부 여당이 요제프 K의 처지가 된 것은 아닐까.
왜 참패를 했는지 정녕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정부 여당도 멀쩡하게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면 잘못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자신의 잘못을 몰랐다면, 바로 그런 무지는‘죄악’인 셈이고 이번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은 진짜 이유다. 이번 선거는 정권과 여당이 이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준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자
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정계 개편이나 새판짜기 등 딴청을 부린다면, 지방선거의 참패와는 또 다른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효종 교수는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 정치학박사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전 동아일보 제9기 객원논설위원 △저서 ‘국가와 권위’ ‘성찰의 사회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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