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집행이사국인 KEDO는 경수로 건설 주계약자인 한국전력에 ‘북한 밖의 경수로 기자재’에 대한 권리를 넘기고 한전은 그 대신 1억5000만∼2억 달러로 예상되는 사업 청산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청산비용은 KEDO가 사업 종료에 따라 공사 참여 업체와 체결한 계약에 대한 위약금과 각 업체가 판단하는 손해에 대한 보전 비용 등으로 쓰인다.
경수로 건설이 중단된 상태에서 사업이 종료돼 그동안 한국 정부가 경수로 건설 및 시설관리 비용으로 쓴 11억3700만 달러(약 1조3655억 원)를 손해 보게 됐다.
▽“한전은 손해 보지 않는다”=정부 당국자는 “경수로 기자재를 적절히 활용하면 한전이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전 측도 “청산 비용의 회수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23종의 원자로 설비와 보조기기 20종, 터빈 발전기 9종 등의 기자재를 플랜트 수출에 활용하거나 국내 원자로 설비를 건설 및 보수할 때 쓰면 청산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것. 현재 기자재는 두산중공업 등 국내 업체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 일본의 히타치도시바, 독일 캐나다 등의 원자로 관련 장비 업체들이 생산해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자재 생산에 들어간 돈은 8억3000만 달러. 따라서 활용만 잘하면 기자재의 감가상각을 감안하더라도 2억 달러 이상은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국원자력기술협회 이상훈 회장은 “요즘 국내에서 새로 짓는 원자로의 기술이 신포경수로보다 진전되긴 했지만 기자재를 새 원자로에 활용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며 “중국 등 외국에 수출하는 데도 기술적인 장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기자재 활용이 늦어질 경우 기술상 문제가 없더라도 과거의 규격을 쓰는 데 대해 국민이 불안해 할 수 있으며 수출을 하려면 미국의 전략물자 통제제도를 통과해야 하는 게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건설 및 시설관리 비용=지금까지 경수로 건설 및 시설관리에 들어간 총비용은 15억6200만 달러. 이 중 11억3700만 달러를 한국이 부담했고 일본은 4억700만 달러, EU가 1800만 달러를 냈다.
미국은 경수로엔 돈을 쓰지 않았으나 북한에 중유를 공급하는 데 3억7353만 달러를 썼다. 또 경수로 건설이 중단된 북한 금호지구에는 굴착기 등 건설 중장비와 차량, 통신설비 등 455억 원에 달하는 물자가 북측에 의해 억류돼 있다.
KEDO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KEDO 사무실에서 집행이사회를 열어 사업 종료를 선언한 뒤 ‘KEDO의 금호지구 내 자산 소유권을 재확인하고 북한에 자산의 반출을 요구한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손해배상 청구나 자산 반출 요구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당국자는 KEDO의 대북 손해배상 청구 결의에 대해 “정치적 선언이다. 방법이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피해 보상을 요구?=북한은 올해 1월 금호지구에서 경수로 관리 인력이 빠져나가자 물자를 억류하면서 “사업 종료에 따른 피해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따라서 KEDO가 이번에 사업 종료를 선언한 데 대해 또다시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올해 말쯤 KEDO가 해체되고 나면 북한이 보상을 청구할 대상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1월 금호지구의 인력 철수로 사실상 사업이 종료된 뒤 지금까지 북한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새롭게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
그러나 정부 내에선 6자회담이 재개돼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이 다시 논의될 경우 북측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한국 미국 일본을 대상으로 보상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북한 신포 경수로 사업 일지
1994년 5월: 북한, 영변 5MW 원자로에서 연료봉 인출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 북한 핵시설 동결 대가로 2003년까지 1000MW 경수로 2기 및 매년 중유 50만 t 제공하기로 합의
1995년 3월: 한미일, 대북 경수로 제공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협정에 서명
1999년 12월: 한국전력-KEDO 경수로 건설 주계약 체결
2002년 10월: 북한, 미측에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계획 추진 시인
2002년 11월: KEDO 집행이사회, 대북 중유 지원 중단 결정
2002년 12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가동 공표
2003년 10월: 북한, 영변 원자로 폐연료봉 8000여 개 재처리 완료 발표 및 신포 금호지구물자 반출금지 조치
2003년 11월: KEDO, 경수로 사업 1년간 일시 중단 합의
2004년 11월: KEDO, 경수로 사업 중단 1년 연장 합의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북의 모든 핵 포기 후 다른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하기로
2006년 1월: 금호지구 잔류 인력 57명 철수, 사실상 사업 종료
2006년 6월: KEDO, 경수로 사업 종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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