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정책홍보토론회에서 나온 노 대통령 발언(본보 3일자 3면 참조)에 대해 현 정부의 정책을 사실상 거부한 지방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임기 후반기 기존 정책기조를 고수하며 ‘마이 웨이’를 선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정책 바꾸면 부동산 투기업자가 승리”=노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정책홍보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다. 그래서 선거에서 패배했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내가 정치를 하는 동안 순풍은 13대뿐이었다. ‘호남당’ 했다고 선거에서 떨어지고 항상 역풍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며 “대통령 선거 그해에도 마지막 20일까지 역풍 속에서 헤맸고, 대통령이 되었다”며 선거 결과에 개의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이 “제도와 문화, 의식, 정치구조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강조한 것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 노 대통령이 주도했던 양극화 해소 등 주요 의제가 잘 정리되면 결국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비쳤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에서 기존 정책기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온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열린우리당 내에서 이번 선거의 주요 패인으로 꼽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지금 부동산 정책을 바꾸면 무슨 대안이 있겠나. 수십 년 동안의 정책을 들여다보고 연구해 본 것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을 선택했는데 대안 없이 무조건 흔들어서 깨뜨리면 결국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어릴 때 ‘방귀 길 나자 보리 양식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었는데 ‘손에 익어 뭔가 좀 하려 하면 끝난다’는 뜻이다”며 “이제 공무원들과 손발을 맞춰 제대로 해보려고 하니 임기가 다 돼 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민심 무시하는 독선”=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많이 나왔다. 본보가 열린우리당 수도권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 응답한 의원 대부분이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했음에도 ‘선거 패배가 중요치 않다’는 태도는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지방정부 분권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지방에 드러나게 공을 들여놓고도 선거에서 대패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선거 결과가 뭐 어때서’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작심한 듯 “이번 패배는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청와대에 ‘오만과 독선을 버리라’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 직후 진실한 대국민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대통령에 대해 개인 명의로 성명서라도 낼까 생각했었다”고 토로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책홍보토론회를 열어 기존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선거 참패가 중요치 않다고 하는 것은 민심을 무시하는 독선을 또다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4일 “‘선거 패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대통령 발언은 공무원 상대 토론회인 만큼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 달라는 취지였다”며 “개인적으로 선거 결과에 대해 포괄적으로 청와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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