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80%가 돌아선 5가지 이유

  • 입력 2006년 6월 7일 02시 59분


지방선거 다음 날 서울 강남의 한 공원에 나온 할머니들이 “속이 다 후련하다”고 말하더란다. 강남에 사는 친지가 들려준 얘기다. 그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들으며 민심의 ‘쓰나미’가 감지되더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만난 소설가는 “국민이 영웅”이라고 근엄한 논평을 했다.

이번 선거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수도권 아파트에서 결판났다는 생각이 든다. 대추리 사태가 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건이라면 아파트 정책은 노 정권의 무모함과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을 방해한 세력은 시위 때마다 북쪽에 동조하는 구호를 외치며 죽봉을 휘두르던 사람들이다. 자식 같은 군인들이 좌익 시위대에 비무장으로 폭행당했는데도 한명숙 국무총리는 “당사자가 한발씩 물러나 냉정을 되찾자”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한 여당 의원은 대추리에서 “미국이 지주고, 우리 정부는 마름, 대추리 주민은 소작인”이라며 군과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다. 대추리 사태를 지켜보고 나서 좌파 정권을 연장시켰다가는 나라가 결딴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아파트 정책은 20%를 때려 80%를 챙기려다 거꾸로 80%로부터 배척받고 20%로 쪼그라든 졸수(拙手)였다. 집 한 채밖에 없는 중산층이 세금폭탄을 맞고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박수를 칠 줄 알았던 서민도 집값만 올려놓는 무능 정권에 화를 냈다. 이 정권은 강북 사람들이 평생 땀 흘려도 한강을 건너가 살지 못하도록 강남북의 격차를 벌려 놓았다.

건설교통부에서 20여 년간 부동산 정책을 만진 한 관리는 “부동산이 요동칠 때마다 시장과 싸웠지만 결국 시장이 이겼다”고 말했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멀리하고 세금 때리기에 모든 것을 건 부동산 정책은 참담한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이 정부의 언론 대책을 들고 싶다. 이 정권 사람들은 6·25전쟁 때 적화(赤化)통일이 안 된 것을 아쉬워하는 강정구 교수의 발언에 대해선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기자’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들과 생각과 관점이 다른 신문들은 자유시장에 맡겨 두지 않고 숨통을 조였다. 발행 부수가 많은 신문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선택받은 신문이다. 동아 조선이 불량식품이라면 친여 신문들은 권장식품인가. 발행부수 200만 부 안팎의 신문들은 적대세력으로 돌려 놓고 공무원들만 들볶은 게 이 정부의 홍보 대책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은 대선과 총선을 너무 쉽게 이겨 오만과 독선에 빠져 들었다. 대선은 2년 내내 지다가 두 달 만에 러브 샷으로 뒤엎었고, 국정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운동권들이 탄핵 바람에 총선에서 무더기 당선됐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폭넓게 존재했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負債) 의식의 덕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분에 넘치는 보상을 받았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요직은 물론이고 관변 문화단체의 물 좋은 자리에도 운동권이 대거 진입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이들을 ‘오후 출근족’이라고 불렀다. 황혼부터 새벽까지 술 마시고 오전에는 속 풀이를 하다가 점심 먹고 오후 2, 3시에 출근한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그들의 편향된 시각과 싸가지 없음에 신물이 나 부채 의식을 완전히 털어 냈노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태자면 한나라당 자치단체장 대표 주자들이 비교적 잘했다는 점이다. 여당은 부패한 지방권력을 심판하자고 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손학규 경기지사의 해외투자 유치는 중앙정부의 무능과 대비됐다.

대추리, 아파트세금, 언론대책, 집권세력의 독선, 청계천…. 민초들의 눈에는 국민의 80%가 돌아선 이유가 빤히 보이는데 여당에서는 ‘개혁을 제대로 못해 선거에서 졌다’는 말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가까이에 있을수록 민심이 잘 안 보이는 모양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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