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도 정도껏 할 일이다. 국민은 아무 칼이나 들이대 생살 찢고 수술하겠다는 ‘무모한 의사’를 더 두고 볼 수 없어, 표(票)로써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촉구했다. 정권에 화가 날 대로 났지만 그래도 임기를 존중하며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민의(民意)를 표시하는 성숙함을 보였다. 그런 국민에게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꾸중까지 하니, 과연 민주국가의 공복(公僕)이 맞는가.
이 장관은 대통령혁신수석비서관이던 올해 초에도 대통령의 ‘혁신 열정’을 찬양하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2004년 35위에서 2005년 29위로 올라갔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올해의 경쟁력은 38위다. 정부 경쟁력은 31위에서 47위로 후퇴했다. 애당초 이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아첨이 ‘오버’였다.
‘고통스러운 대통령’을 마취시키려는 듯한 고위 관리들의 아첨 경쟁은 도를 더해 간다. 차의환 혁신수석도 이에 합류한 듯하다. 그는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띄운 글에서 “대통령의 인생 자체가 혁신”이라며 “누가 내게 혁신에 대해 묻는다면 눈을 들어 북악(청와대)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국민이 청와대를 바라본다면 ‘민생을 윤택하게 해 준 혁신’을 실감할까, 아니면 ‘민생을 피폐하게 만든 실정(失政)’을 떠올릴까.
고위 관료들이 민심(民心)을 똑바로 읽으려 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심기(心氣) 관리에 매달리는 행태가 ‘불행한 정권 말기 현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부의 위아래가 다 이래서는 국정에 대한 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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