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늘리고 복지 혜택을 늘리려면 더 많은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
“이 정도 참패라면 정권을 내놔야 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신임 의장이 11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연 취임 기자회견과 이후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의 일부다.
얼핏 들으면 한나라당 쪽 사람의 얘기 같기도 한 이런 파격적인 발언을 김 신임 의장이 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 열린우리당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가 주목된다.
김 의장은 ‘비상대책위원장은 임시 의장이 된다’는 당규에 따라 2004년 1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실제 창당은 2003년 11월) 이후 9번째 의장이 됐다.
▽전략적 보수?=김 의장은 이날 열린우리당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개혁’ ‘민주평화’ 등의 말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만 생각하겠다”고 강조하는 등 경제 얘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더 많은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복지를 위해서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논리였다.
자신을 포함한 ‘민주화 세력’과 ‘기득권 세력’인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도 눈길을 끈 대목이었다. 그는 “민주화 세력은 정권 교체와 정권 재창출로 이미 보상을 받았고, 한나라당은 정권을 내주면서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0일 6월 민주항쟁 19주년 기념식에서 그는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니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도덕성에 대한 보상을 받았고, 한나라당은 과오의 대가를 치렀으니 결국 양자가 동등한 입장이 됐다는 얘기다. 그만큼 열린우리당이 분발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 “잘난 체하고 오만한 열린우리당의 자업자득이다”며 “이번 선거가 중간평가 성격을 띤 것임을 감안할 때 내각책임제라면 물러날 수 있는 수준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정권을 내놓을 정도이지만 내놓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대권 행보’에 대해서는 “대권을 위한 꼼수는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수행하는 이번 당 의장직이 대권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좌파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편향된 자신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면 대권 도전 기회가 물 건너간다는 절박감이 김 의장으로 하여금 ‘발상의 전환’을 촉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 일자리 정책 방향은=김 의장은 서울시장 후보로 당내 경선에 참여했던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의 이계안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이 의원이 ‘시장주의자’라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김 의장은 이날 부동산·세제 정책에 대해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방향은 옳다. 하지만 필요하면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국민의 문제 제기를 경청하고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측근 의원은 “청와대와의 관계를 의식해 신중하게 말했지만 ‘일부 수정’ 쪽에 방점이 찍혔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열린우리당은 12일 김 의장 주재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부동산·세제·일자리 정책 등을 점검하는 기획단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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