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마다 돌아가면 각국 모델 벤치마킹

  • 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의 다른 대통령에 비해 해외 모델의 벤치마킹에 열심이다.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거론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미국 민주당의 양극화 해소 전략을 담은 ‘해밀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해외 벤치마킹은 국가성장 전략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 운용방식은 물론 과거사 정리방식, 남북한 통일모델, 국방개혁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 국가 성장모델

해외 벤치마킹을 둘러싼 최초의 논란은 참여정부 출범 초인 2003년 7월 이정우 당시 대통령정책실장이 네덜란드식 신(新)노사협력모델을 거론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이 실장은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노사관계는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의 모델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 측은 노조의 권리와 제한적인 경영 참여를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계는 노조의 경영 참여 부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고, 청와대 측이 “경영 참여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2004년 12월에는 박기영 당시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독일과 같은 강중국(强中國)을 발전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청와대는 모든 정파와 사회세력이 대타협을 이룬 아일랜드 모델을 제시하면서 정치 사회적 연대를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과거 스웨덴에서도 당면한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협약(살트셰바덴 협약)을 체결했다”며 스웨덴 모델을 거론했다. 이에 따라 ‘국민대통합 연석회의’가 발족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현 정부가 추구하는 모델이 과연 무엇이냐는 혼선도 나타났다. 노사정 대타협 추진도 노동계 설득에 실패하면서 별 성과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올해 3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해 ‘좌파’와 ‘신자유주의’가 상호 모순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모델은 개발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아일랜드나 독일 모델로 보인다”며 “노 대통령이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도 그런 뜻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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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정치-통일모델

노 대통령이 2003년 10월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이나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하는 자주외교 노선, 국방개혁 방안 등은 대체로 프랑스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프랑스식 동거정부는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수시로 입에 올렸다. 과거사 청산 방식에 있어서도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사례를 자주 거론했다.

권력운용 방식에 있어 노 대통령은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지향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으나 시기적으로 여러 차례 변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2002년 12월 당선 직후 “2004년 총선 결과에 따라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로 정부를 운영할 용의가 있다”고 했으나 2003년 8월 취임 6개월을 맞아 공무원과의 온라인 대화에서는 “일단은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로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할 때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대연정 사례를 자주 들었다.

통일 모델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4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과 같은 방식은 그대로 반복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방식은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기 때문에 남북한 간 격차를 줄여나갈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개방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 왜 해외 벤치마킹에 매달리나

해외 사례 벤치마킹 보고서는 청와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재외공관에서 보내오는 것들이 많다. 과거와 달리 재외공관에 파견된 공무원들에게는 주재국이나 인근 국가의 여러 모델을 분석해 보고서를 내는 것이 중요한 업무로 돼 있을 정도다. 실제로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과 함께 읽는 보고서’ 코너에는 지난해 5월 이후 각국 재외공관에서 보내온 10여 건의 해외 사례 벤치마킹 보고서가 올라 있다.

이는 노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과 국정 운영기조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은 모든 사안을 ABC부터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는 “일상적 국정운영은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 자신은 중장기적 국정과제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거대담론’에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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