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돈 바르는 관사(官舍)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크고 좋은 집을 말하는 ‘고대광실(高臺廣室)’은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어딘지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스며 있다. 제 돈을 들여 짓는 사저(私邸)라 하더라도 그렇다. 호사스럽게 집을 치장하고 돈을 들이는 데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제 돈도 아니고 국민 혈세를 쏟아 붓는 청사나 관사임에랴. 높고 넓게 지을수록 좋은 소리 못 듣게 돼 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남 진해시 저도별장에 여름휴가를 갔다. 그는 “목조건물을 손질해서 잠을 잘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해 둔 뒤였다. 그런데 가 보니 새 집 한 채가 번듯하게 서 있었다. 그는 경호실장을 불러 “수리하라는 집을 없애고 새로 지은 건 무슨 짓이냐!”고 꾸짖고는 짐을 싸서 청와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세금을 헤프게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참모들이 달래서 사태는 수습됐다.

▷5공 시절 ‘지방 청와대’라는 것이 있었다. 도지사 공관이 어찌나 넓고 크던지, 궁궐에 가까웠다. 대통령의 유숙(留宿)까지 고려한 시설이라 해도 박정희 시대라면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5공 비리(非理)’ 조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이 관사들이 지금도 입방아에 오른다. 16개 시도의 관사 중 절반은 없애거나 공공 용도로 바꾸었으나 8곳의 시도지사가 아직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새로 뽑힌 단체장들을 위해 억대의 수리비를 들이고 있다.

▷청사에 돈을 너무 들인다는 말썽도 끊이지 않는다. 시청사에 1년 치 지방세수의 3분의 2가 넘는 1800억 원을 쏟아 넣어 개탄을 부른 곳도 있었다. 오죽하면 감사원이 ‘호화 청사나 관사의 신증축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할까. 행정을 감시하는 국회조차 최근 ‘불필요한 낭비성 공사’로 멀쩡한 타일과 조명등을 바꾸고 6억 원을 들여 탁자와 의자를 갈았다. 그 이용자인 국회의원들이 “혈세 낭비”라고 자탄할 지경이다. 제 돈이라면 그렇게 쓸까. 여전히 국민은 봉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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