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너희가 6·15를 아느냐

  • 입력 2006년 6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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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솔직해졌으면…. 광주 6·15민족통일대축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엔 ‘아, 얼른 통일합시다’라는 구호도 나붙었다지만 정말 이렇게 하면 통일이 되는 것일까. 대체 6·15공동선언이 뭐기에 남북이 얼싸안고 금방이라도 통일될 듯 춤을 추는가.

6·15선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15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통일 구상이다. 두 사람은 DJ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자고 했다. 그게 전부다. 경협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신뢰 구축 등도 명기됐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다.

6·15선언 자체는 의의가 작지 않지만 통일 구상은 허점이 많아 여전히 논란거리다. DJ의 연합제만 해도 그렇다. 연합제는 그의 3단계 통일론(연합-연방-통일)의 제1단계로 ‘남과 북이 독립국가로서 주권과 모든 권한을 보유한 채 남북연합 정상회의, 각료회의와 같은 협력기구를 만들어 평화 공존, 평화 교류를 하는 단계’를 뜻한다.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나온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유사하다. 다만 후자는 교류 협력의 결과로 연합제가 이뤄진다고 본 반면, DJ는 연합제라는 가건물을 먼저 지어야 교류 협력도 증대된다고 보았을 뿐이다.

바로 이 대목이 문제다. DJ의 말대로 ‘남북연합 정상회의’ 같은 기구가 만들어지고 정례화될 정도라면 교류 협력쯤은 이미 일상화돼 있어야 한다. 아니, 통일까지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남북연합 정상회의, 각료회의 등이 정례화될 수준이라면 핵 문제도 해결되고, 평화체제도 어느 정도는 구축돼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남북관계로 보아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관념 속의 연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단계까지 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누가 연합제까지 갈 줄 몰라서 안 가겠는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991년 1월 1일 당시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직후였다. 김 주석은 “조국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면서 “남북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준 후 차츰 중앙정부의 기능을 높여 가는 연방제 방안에 대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이 1980년 10월에 제시한 공식 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로 곧바로 가지 않고 과도기적 단계를 거쳐서 갈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김 주석으로선 한발 물러선 셈인데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김 주석의 통일 방안에 김 국방위원장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이름을 붙여 DJ와의 정상회담 때 들고 나온 것이다.

그나마 충분히 준비된 통일방안도 아니었다. 이 방안이 정상회담 4개월 뒤인 2000년 10월 6일 ‘고려연방제 제시 20주년 기념 보고회’에서 비로소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이름으로 공식 보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고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지금 광주에 와 있는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바로 그 사람이다.

6·15공동선언은 이처럼 현실과 유리되고,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통일방안이 위태롭게 잇대어져 있는 데 불과하다. ‘선언’까지 간 DJ의 열정과 노력, ‘선언’에 따른 상호 적대감 완화의 긍정적 효과까지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6·15선언의 본질이 그렇다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방안을 놓고 당장 협의를 할 형편도 못 된다. 북의 처지가 더 그렇다. 북은 서독에 의한 동독 흡수통일의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북이 6·15선언에 매달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선언’대로 안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언’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진작 6·15를 버렸을 것이다.

이는 북이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총 4장 25조로 된 기본합의서야말로 ‘통일헌장’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정교하다. 북이 정말 통일할 의지가 있다면 당장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당국자회담을 하자고 해야 옳다. 북이 그럴까. 어림없는 소리다.

6·15의 환상에서 그만 벗어나자. 정 아쉬움이 남는다면 민간단체들끼리의 행사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선에서 마무리하자. 위헌(違憲)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까지 나서서 북의 장단에 춤춰서야 되겠는가. 6·15 말고도 남북 간에 해야 할 일은 많다.

이재호 수석 논설위원 leejaeho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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