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4월 29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초청해 조찬 회동을 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사학법 재개정에 난색을 표시한 김 원내대표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이 원내대표 측이 16일 전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은 야당의 사학법 개정 요구를 들어주시고 한나라당은 (사학법과 연계해) 묶어 놓았던 것을 풀어주시면 국정에 서로 좋지 않느냐”고 했으나 김 원내대표는 “사학법 개정에 대해 당내에 반대가 많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
이에 노 대통령은 “여당은 대통령에게 삿대질하는 것으로 지지율을 올리지 않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이 원내대표는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돌아왔으나 김 원내대표는 여전히 “(사학법 개정 요구를 들어주면) 선거를 못 치른다”며 버텼다는 것이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 선거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되진 않는다”며 “필요하면 내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설득하겠다”고까지 말했다는 것. 그리고는 배석했던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오늘 대화는 어차피 다 공개될 텐데 내 얘기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회동을 마친 뒤 이 비서실장에게 발표 수위를 낮춰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당일 청와대 발표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직설적 언급은 빠졌다.
사흘 뒤인 5월 2일, 열린우리당은 결국 사학법 개정을 거부하고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부동산대책 후속 입법 등을 강행 처리했다. 노 대통령의 요청이 여당에 의해 곧바로 거부된 것.
하지만 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오히려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국정 운영 방향을 놓고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다수 의원은 선거 패배의 1차적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선거를 앞두고 이해찬 국무총리 교체 등 당의 요구는 다 들어줬는데 무슨 소리냐”고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노 대통령은 “한두 번 선거로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 “저항 없는 개혁은 없다”며 ‘개혁 지속’을 강조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등 돌린 민심에 당황하며 부동산 세제 등의 정책 노선 수정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일각에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의 뜻대로 사학법 개정을 수용해 여야 합의로 부동산대책 관련 안건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방선거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한나라당은 19일부터 시작될 임시국회를 앞두고 다시 사학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원점으로 돌아온 사학법 개정 문제가 당청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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