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도 2004년 6∼11월에 의원들과 정부가 발의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6건이나 되지만 아직까지 처리되지 못한 채 낮잠을 자고 있다.
▽급식 사고, 솜방망이 처벌 반복=2003년 5월 전북 완주군의 한 청소년 수련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제공한 음식물에서 식중독균인 ‘켐피로박터균’이 발견돼 215명이 식중독에 걸렸다. 수련원 운영자 이모 씨가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입건됐으나 500만 원 벌금형에 그쳤다.
음식물에서 발생한 균을 검출해 내지 못할 경우 검찰에서는 심지어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2003년 3월 수도권 13개 학교 학생 1557명이 동시에 복통과 설사, 구토 증상을 보였지만 급식업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학교 측의 계약해지 통고도 법원에서 취소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급식 사고는 고의가 아닌 과실로 인정되면 행정처분에 그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청소년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지만 형사처벌도 대부분은 벌금형이었다.
▽급식법 개정안은 ‘낮잠’=국회 교육위에 계류중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에는 이번 급식사고의 원인으로 꼽히는 위탁급식을 단계적으로 직영급식으로 전환하고, 솜방망이 처벌도 보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탁급식을 한다 하더라도 학교운영위원회의 의견만 청취하도록 돼 있는 조항도 학교운영위의 심사 자문과 관할 교육감의 사전 승인을 의무화했다.
개정안에는 또 업체나 학교 측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식중독 같은 사고가 났을 때에는 징계나 형사처벌을 한층 강화하도록 한 처벌조항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 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21일 교육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간단한 토론이 진행된 뒤 1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한 차례의 공청회가 있은 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네 차례 교육위의 법안심사소위에 안건으로 오르긴 했지만 사립학교법과 법학전문대학원법 등에 밀려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정치권, 대책 마련에 총력=한명숙 국무총리는 23일 오전 긴급 장관회의를 열어 다음 주부터 이달 말까지 전국 1만여 개 학교에 대한 대대적인 급식실태 전수(全數)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대형 식자재 업체를 상대로 조리시설 등에 대한 일제 점검도 실시한다.
또 고위 당정협의를 통해 학교급식법과 식품관련법도 재정비하기로 했다. 식자재 공급업체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급식 납품방식도 위탁방식에서 학교직영 관리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열린우리당은 국회 교육위에 계류 중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늦어도 올해 정기국회 때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검찰청은 이날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중독 조사를 지휘하도록 하는 등 원인 규명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관리 소홀인지, 부패한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며 “어느 정도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9월 말까지 급식공급업체와 도시락업체 등에 대해서도 집중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직영급식으로 바꾸자는데…사고 발생땐 제재근거-기준 모호▼
서울 인천 경기지역 중고교에서의 대규모 급식 사고를 계기로 대형 급식업체에 의한 위탁급식보다는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예산지원 등을 통해 직영급식 전환을 유도하고 있지만 학부모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있어 직영급식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급식의 직영 전환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식중독 사고는 학교급식에 대한 위생 관리, 감독 체계의 부실과 민간업체 위탁 운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이윤 추구가 목적인 민간업체에 급식을 맡기는 한 급식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위탁급식을 할 경우 업체는 이윤을 내기 위해 값싼 재료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위탁급식 체계를 직영으로 전환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영급식이 반드시 질 높은 급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직영급식은 학교장 책임 하에 소규모로 자체 조리를 하기 때문에 책임경영이 가능하고 위생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급식사고 발생 시 제재 근거와 기준이 미흡하다는 단점이 있다.
시도교육청이 연 2회 이상 위생 점검 및 지도를 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부실하게 점검하는 경우도 많고, 영양사나 조리사에 대한 위생교육을 학교 차원에서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실제 결핵 보균자를 조리원으로 채용한 학교도 있었다.
위탁급식업체는 급식조리에서부터 인력관리, 안전점검까지 업체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반면 직영급식은 학교단위로 식단을 짜기 때문에 식재료 구매 관리를 스스로 해야 하고 급식설비나 인력도 부족해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급식설비, 인건비, 운영비, 식품비 등을 시도교육청이 모두 부담하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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