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은 어려운 탄생 과정을 겪었다. 1948년 제헌국회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천(提薦)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안을 부결시켰다. 이 조항은 현행 헌법의 제87조 제1항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提請)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당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은 국민의 의사에 합치되는 정치를 구현하는 동시에 정부의 공고성을 유지하며 각 행정부처의 통리감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헌국회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제헌의원들은 장점보다 더 큰 정치적 폐해(弊害)를 우려했다. 국무총리가 제청한 사람을 대통령이 거부하고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국무총리가 제청해 주지 않는 일이 생기면 헌정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또 대통령 책임제의 입헌 취지에도 모순된다는 것이 부결의 이유였다. 아울러 제헌의원들은 국무총리의 제청권이 국무총리의 독재(獨裁)를 야기할 가능성까지 있다고 생각했다.
제헌의원들은 건국과 반공의 시대적 요구와 정치적 기치(旗幟) 아래 강력한 대통령의 등장을 고대했다. 그러나 2년 후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뿌리 뽑기 위해 내각책임제와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 도입을 주창하게 된다.
결국 처음 조항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발췌 개헌을 통해 현행 헌법의 형태로 변경되었다. 당시 장기 집권을 노린 이 대통령은 국회를 회유하기 위해 대사나 공사 등 외교관의 국회(상원) 인준권과 더불어 국무위원의 국회(하원) 인준권까지 제시했다. 그는 ‘진정한 민의(民意)와 국회의 의사(意思)를 존중하고 정부와 국회의 원만한 협조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임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와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절충한 발췌개헌안을 제시하고, 군인을 동원해 국회의 개헌 정족수를 채운 후 독회(讀會)도 생략한 채 기립표결을 시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불법적으로 개헌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국무위원 인준권은 사라지고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이 도입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탄생 배경 때문인지 국내에서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은 그 헌법적 의의에 어울리지 않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이후의 독재자들도 모두 국민의 의사와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임명권을 행사함으로써 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은 독재 청산의 의지를 담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표현이다. 이는 대통령의 임명을 위해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한다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진정한 민의(民意)와 국회의 의사(意思)’를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헌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개각이 이러한 헌법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 미국헌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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