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 독재’시대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은 9일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올려 “누군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 미사일 사건을 비상사태로 몰아가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사건일 뿐 안보적 차원의 비상사태로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북한의 위협을 애써 외면하는 위험한 발상이란 반론이 많다.
정부는 5일 새벽 북한 미사일 첫 발사 후 1시간 반 이상 지난 오전 5시 12분에야 노무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일자 “대포동2호 미사일만 대통령에게 심야 보고하게 돼 있다.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은 심야 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 스커드미사일은 미국 일본보다는 오히려 남한 안보에 더 위협적이다.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의 사거리는 각각 300∼500km, 1200∼1500km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상희 합동참모본부의장은 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노동과 스커드미사일을 6발이나 쏜 것은 무력시위”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정치적 사건’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 “실질적 대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주석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은 6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우리의 실질적 대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늑장대응 비판론에 대한 반박이었으나 5일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벌어진 객관적 상황을 도외시한 아전인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은 5일 오전 3시 32분 첫 미사일 발사 상황을 확인했으나 이 사실은 30분이나 지나서 청와대에 보고됐다. 정부는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 시점이 당초 ‘오전 5시’라고 발표했다가 뒤늦게 ‘오전 5시 12분’으로 정정했다.
정부는 북측이 미사일 발사 전 자국 선박에 대해 미사일 착탄지점인 동해상에 ‘항해금지 구역’을 설정했다는 정보를 3일경 파악하고서도 이를 우리 항공사나 선박에 제대로 전파하지 않았다. 이 정보를 모르던 우리 여객기가 5일 새벽 동해상을 비행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언론에서 제기되자 정부는 뒤늦게 7일 여객기 항로 변경조치를 취했다.
○ “일본처럼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은 9일 “일본처럼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야단법석으로 공연히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차분한’ 대응이 일본의 군비 증강을 우려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설명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이 군비 증강 명분을 찾는다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 오히려 한국 정부의 ‘침묵’이 북한에 ‘동조’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일본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인은 “5일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한국 정부의 독도 해류조사가 동시에 진행된 것을 보고 남북한이 일본을 협공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서 수석이 6일 “언론도 책임 있게 생각하고 보도해야 한다”며 언론 탓을 하고, 청와대 브리핑이 9일 “안보독재 시대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보독재 시절에 재미를 보던 일부 야당과 언론이 문제”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황당한 책임 전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서 수석의 글은 부적절한 브리핑이었다. 이를 읽고 당혹스러웠다”며 “언론과의 전쟁을 치르는 분위기로 가서는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조차도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국방장관도 “헷갈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도 북한이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 7발을 잇달아 발사한 전례가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뒤늦게 이를 정정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윤 장관은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내 기자실에 예고 없이 들러 출입기자들과 환담하면서 “북한이 1993년에도 나흘간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 7발을 발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1993년 5월 말 북한이 사거리 1300km인 노동1호 1발을 발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나흘간 7발의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는 얘기는 처음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어서 이를 들은 기자들은 순간 긴장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 확인해 보니 당시 북한은 이틀간 스커드와 노동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3발을 연쇄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나흘간 7발을 발사했다는 윤 장관의 발언을 정정했다.
국방부 측은 “윤 장관이 구체적인 수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켰다”며 “1993년 당시 외신을 비롯한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최대 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내용도 이미 보도됐다”고 설명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日 5월부터 北 미사일 대책 치밀준비…일사분란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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