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과 붙어봐야 한다’는 호언 비웃는 日 외교력

  • 입력 2006년 7월 19일 03시 04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 채택으로 이를 주도한 일본의 외교력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 외교의 쾌거”라는 일본 내의 평가도 있지만 스티븐 해들리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까지 “일본 외교의 위대한 성과이자 승리”라고 밝힌 것은 예사롭지 않다. 북의 미사일 도발이 결국 외교·군사 강국으로서의 일본의 부상(浮上)을 앞당긴 셈이다.

일본은 패전 후 반세기가 넘도록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다.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흐름을 따랐을 뿐이다. 1991년 걸프전 때는 미국에 130억 달러의 전비(戰費)를 지원하고도 고맙다는 소리조차 못 들었다. 북핵 6자회담에서도 한때 핵심 의제와 무관한 일본인 납북 문제를 꺼냈다가 다른 참가국들의 눈총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일본이 ‘북 미사일 국면’을 주도하고 있다. 결의문 채택에 이어 대북 송금 금지와 무역 제한, 일본 내 북한자산 동결 검토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선도하고 있다. ‘안보가 위협받았다’고 믿는 일본으로선 필요한 대응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가 일본이 군사대국화의 명분을 축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일본은 당장 미국과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에 속도를 붙이게 됐고, 이를 통해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도 염두에 두는 전략적 구상을 할 수 있게 됐다. 6·25전쟁 특수로 경제 회생의 토대를 마련했던 일본이 북 미사일로 초래된 한반도의 긴장을 이용해 동북아의 패자(覇者)로 나아가게 된다면 아이러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북한을 두둔하는 듯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붙어 봐야 한다”고 말로만 큰 소리를 쳤다. 북의 도발이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동맹 강화를 촉발하고, 이것이 다시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 질서가 요동치게 되는 메커니즘을 생각하고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국제관계에선 상황에 대한 입체적 고려 없이 분노만 표출해선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 외교의 현주소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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