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결의 후…‘동포냐 동맹이냐’ 이분법 사고 바꿔야

  • 입력 2006년 7월 19일 03시 04분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의 한 식당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뒤 함께 나서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시내의 한 식당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뒤 함께 나서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북한의 미사일 무더기 발사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한미동맹과 한일 공조, 한중관계의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출했다. 대북정책이 포용 일변도로 가면서 한미동맹과 한일 공조의 틈이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사일 발사에도 무덤덤할 정도로 한국 정부 내의 ‘안보 불감증’은 심각한 상황. 이 같은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전문가들에게서 들어봤다.》

▼제안1 “동맹, 공조 그리고 견제”▼

○ “남북관계 우선한다는 불신 없애야”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근본 원인은 북한의 돌출행동이지만 북한에 대한 대응 방식과 시각 차로 인한 한미동맹 균열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뒤 한국 정부가 ‘동포(북한)냐, 동맹이냐’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외교정책을 편다는 불신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 대통령은 9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어차피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라면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이익을 실현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또 노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해 ‘선참후계(先斬後啓·일단 처형하고 잘잘못을 따짐)’ 등의 표현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1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용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수용, 이라크 파병 등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다 내주고도 ‘말 따로, 행동 따로’ 식의 신중치 못한 대처로 한미동맹의 신뢰 수준을 극도로 저하시켰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이어 “유엔 대북 제재 결의문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도권이 백지상태가 됐다는 것을 뜻한다. 결의문으로 고립된 국가는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며 “남한 내 보수세력으로부터의 압박, 미일 강경파가 주도하는 국제적 외교적 압박에 중국까지 동참하면서 우리는 ‘따따블 볼란치(축구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시달리게 됐다”고 밝혔다.

○ “일본 총리 교체가 공조 복원 기회”

한일 간 문제는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역사 및 독도 문제가 얽혀 있어 간극을 쉽게 좁히기 힘들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안정적인 대북정책의 구현과 중국의 패권 견제, 남북 통합의 여건 조성을 위해 일본과의 공조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일본에선 청와대가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을 비판한 데 대해 ‘노무현 정부와는 한일관계 복원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는 “9월 일본 총리가 바뀌고 정권이 개편되면 그것을 명분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력한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신사 참배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북한은 중국이 안보를 담보해 줄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불신하고 있다”며 “북-중관계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제안2 “남북관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은 현 정부의 남북관계 관리의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상호주의에 입각하지 않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북한을 국제사회의 기본 규칙도 지키지 못하는 ‘버릇없는 아이(spoiled child)’로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남북대화는 물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 전반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퍼주지 않으면 상대하려 하지 않고 중요한 논의는 미국하고만 하려는 북한의 태도에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할 시점이 됐다”며 “대북 지원이나 경협도 포용 일변도로 가는 것보다는 압박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경제 부문의 정책수단은 북한의 개혁 개방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경협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북한 체제 변화의 진전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그 지표로 △시장경제화 △농업개혁 추진 △대외개방 확대 등을 예시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은 남북대화의 동력을 살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어 결과적으로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간 것은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라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한 대처였다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대화의 동력을 살리는 수단으로 장관급회담 대신 적십자회담을 꼽으며 “2004년 탄핵정국과 북핵 위기 고조 등으로 어수선했던 남북관계의 숨통을 틔워 준 것은 그해 4월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제안3 “안보시스템”▼

전문가들은 대북 유화정책에 지나치게 편향돼 균형감을 상실한 안보라인의 구조적 쇄신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남북관계에 ‘다걸기(올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보분야가 등한시됐고, 결국 북한 미사일 발사 도발조차도 위기로 여기지 않는 ‘안보 불감증’이 초래됐다는 것. 또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드러난 정부 위기관리 매뉴얼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NSC 상임위원장에 안보전문가를 기용하는 등 대폭적인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비역 중장인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한국에 실질적 위협인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의 발사가 대통령 보고사항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위기 매뉴얼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같은 위기상황 발생 시 한국이 미국과의 원활한 정보 공조를 유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 교수는 “한미 간 대북정보 공조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균열 조짐이 보이면 즉시 최고 정책결정권자에게 보고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안보정책 위기를 해소하려면 조직 쇄신의 차원을 넘어 대북정책 결정권자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은 “각종 대북 지원으로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북한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며 “굳건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결정권자의 대북정책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조언해 준 전문가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호섭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전 국방부 차관)

신상진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정세현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전 통일부 장관)

제성호 (중앙대 법학과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황진하 (한나라당 의원-예비역 육군 중장)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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