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은 26일 인사차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을 찾아온 강 대표에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정권 교체가 잘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면담은 비공개로 40여 분간 진행됐다. 고흥길 중앙상임위의장, 박진 서울시당위원장, 박재완 대표비서실장, 유기준 나경원 대변인이 배석했다. 그런데 유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비공개 면담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김 추기경이 면담 때 한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종교 지도자가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등의 누리꾼 반응이 쏟아졌다.
유 대변인은 부랴부랴 긴급 해명에 나섰다.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조언을 한 것이라는 취지였다. 유 대변인은 “말은 제대로 전달했는데 듣는 사람에 따라 오해 가능성이 있어 해명에 나섰다”고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례적으로 “덕담 수준으로 한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종교 지도자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강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공개 면담 때 한 이야기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행인데 대변인실에서 경험이 일천해 큰 실수를 했다”며 “추기경과 천주교에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유감스럽다”고 사과했다. 최근 임명된 대변인의 경험 부족으로 큰 사고가 났다는 것. 하지만 한나라당이 김 추기경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 대변인이 면담 내용을 브리핑하는 동안 전국 4곳에서 재·보궐선거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득표 전략으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가 정권 교체를 열망하고 있다는 말을 재빨리 퍼뜨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게 해 주소서.” 김 추기경은 기도로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면담을 마무리했다.
한나라당은 추기경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작은 정당’으로 변한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박민혁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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