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사에 전설적인 측근 전횡도 있다. 기력을 다해 죽어가는 황제가 환관의 손바닥에 붓글씨로 ‘十四(십사)’라고 적는다. 열네 번째 아들을 후계자로 점지한 것이다. 그러나 환관은 나서면서 十(십)을 혀로 핥아 버린다. 그렇게 해서 넷째가 권력을 승계하게 되고 황제는 숨을 거둔다. 그 환관은 원래 넷째 아들 편이었던 것이다. 그 환관은 ‘정권인수위원장’이 되고 세상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미국이라 해서 다르지도 않다. 대통령 집무실에 걸어서 몇 분 안에 갈 수 있는 웨스트 윙(서관)에 근무해야 ‘실세(實勢)’ 소리를 듣는다. 정권이 바뀌면 그 웨스트 윙에 누가 둥지를 트느냐가 뉴스거리다. 대통령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파워다. 청와대 의전비서나 부속실장은 면담 일정이나 만지는 것이 소임이다. 이들에게 법적으로 ‘큰 권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의 권력은 막강하다. 대통령 바로 옆에서 문고리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실세 비서 판도’가 드러났다. 고위 공무원단이라는 묶음 속에 가나다라마순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졌다. ‘가’급에는 바로 의전, 부속실장을 비롯해 국정상황실장 연설기획 총무 홍보기획 민정 인사관리 안보전략 대변인 등이 들어 있다. 이들은 부처에서 나온 ‘마’급보다 최고 1000만 원 정도 연봉이 많다고 한다. 측근 실세라면, 파워에 걸맞게 청렴하고 ‘쓴소리’도 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미스터 쓴소리’가 정치인으로 부활하는 걸 보고 대통령 측근들은 자성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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