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부총리, BK21 논문 중복보고 “실무진 실수” 석연찮은 해명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두뇌한국(BK)21 사업의 보고서에 같은 논문을 업적으로 이중 보고한 데 대해 사과했으나 사퇴 의사는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강병기 기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두뇌한국(BK)21 사업의 보고서에 같은 논문을 업적으로 이중 보고한 데 대해 사과했으나 사퇴 의사는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강병기 기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논문표절 예방과 학문윤리 정착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독고윤 아주대 교수(가운데)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은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경제 기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논문표절 예방과 학문윤리 정착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독고윤 아주대 교수(가운데)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은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김경제 기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물론 같은 연구팀 교수도 두뇌한국(BK)21 사업 최종보고서에 같은 논문을 이중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BK21 사업은 교육부의 주도로 이뤄진 국가사업이란 점에서 김 부총리 연구팀의 허위 보고 경위는 명백히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김 부총리는 자신의 허위 보고를 실무진의 실수로 돌렸지만 다른 교수도 이중 보고한 사실이 새로 드러남으로써 이 같은 변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김 부총리 연구팀은 2002년 9월 제출한 BK21 사업수행실적보고서에서 모두 46편의 논문을 작성했고 이 가운데 김 부총리가 8편을 작성했다고 보고했다. 이 8편의 논문 가운데 2편이 동일한 논문이었다.

교육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은 관련 서류가 없어 이 2편의 논문에 어떤 점수를 줬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진은 논문별 심사 자료를 보관하지 않고 있은 것은 물론 이 연구팀이 제출한 최종보고서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국민대 연구교수로서 보고서 작성 실무를 맡았던 건국대 행정학과 소순창 교수는 “조교 3명과 작업하면서 제목이 다른 논문을 다 보고서에 올린 것 같다”면서 “교수들은 연구 일정 등 전문 분야에 치중하다 이를 점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연구팀 H 교수도 똑같은 논문 2편을 이중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수는 46편 중 13편을 썼는데 제목과 일부 내용만 부분적으로 고쳐졌으며, 목차 제목과 결론도 대부분 똑같았다.

H 교수는 또 ‘정부의 지식정보산업 지원시책 및 문제점’ ‘지역 정보산업의 활성화 대책-중앙정부의 정책분석과 발전전략’이란 논문을 각기 다른 학술지에 실었으나 내용은 상당 부분이 비슷하다.

같은 주제라도 연구방법이나 분석법을 달리하면 학계는 다른 논문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이처럼 일부 내용만 바꾼 것은 사실상 자기 표절로 봐야 한다.

김 부총리 측은 한 학술지에 발표한 내용을 다른 학술대회에서 다시 발표하는 것이 학계 관행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중복 발표한 논문을 보고서에까지 포함시키고 같은 연구팀에서 이중 보고가 2건 이상이나 돼 ‘실적 부풀리기’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학계에선 연구사업의 수나 연구비가 많은 이공계에 비해 인문사회계는 사업단이 적기 때문에 대학 간, 연구팀 간 경쟁이 심해 실적을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김 부총리 연구팀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팀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을 수 있어 BK21 사업 전반에 대해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BK21 사업에 참여했던 K 대의 한 연구원은 “1단계 사업 결과가 2단계 사업자 선정 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적을 꼼꼼히 점검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국가사업인 만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런 식으로 검증하면 교수출신은 장관못해”▼

김병준 부총리는 두뇌한국(BK)21 사업 최종 보고서에 동일한 논문을 이중으로 담은 사실에 대해선 연구책임자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논문 표절 의혹 등은 강하게 부인했다.

김 부총리는 27일 오전에 열린 기자간담회 이후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실무자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실수한 것 같지만 이는 책임자인 내 잘못”이라며 “연구 실적을 올리려고 같은 논문을 이중으로 제출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 신모 씨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말 표절한 게 아니다”면서 “표절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표절이라니…’라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양심에 부끄러운 것은 없다”면서 “의혹들이 있겠지만 앞으로 짐으로 생각하고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신 씨는 50대 학생이었는데 밤늦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안쓰러웠다”며 “신 씨의 논문이 잘 진척되지 않아 연구 방법이나 데이터 수집 방법을 많이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교수의 반대도 있었지만 신 씨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에서 논문을 달라고 자꾸 부탁해 등재 학술지도 아닌데 논문을 써 줬고, 외부 발표 논문을 모아 편집하는 교내 학술지에 또 실었는데 이게 문제가 됐다”면서 “학계의 관행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보고 강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맺고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 정에 이끌려 결국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됐다”면서 김 부총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각주까지 들이대며) 검증하면 앞으로 교수 출신은 절대 장관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 수장으로 교육정책 사업을 제대로 내놓기도 전에 염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면서 “나에게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일을 할 기회를 주시길 감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요즘은 가족이 모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밤잠을 설치며 ‘학교 선생이 너무 멀리 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김 부총리는 사퇴 의사를 묻자 “원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인적자원개발, 교원평가제 도입, 교원단체 문제 등 내가 교육부에 온 이유가 있다. 정말 잘해 볼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일을 잘못하고 정책 방향이 틀렸다면 호되게 꾸짖어 달라. 잘못된 정책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받겠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 한나라 ‘표절예방’ 정책간담회

7일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표절예방과 학문윤리 정착을 위한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김병준 부총리의 도덕성 및 학자로서의 윤리의식 결여를 지적했다.

주제발표자인 아주대 독고윤(경영학) 교수는 “학자나 교수들이 동일한 논문을 여러 곳에 발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러한 행위 역시 표절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일한 논문을 중복 발표하는 행위를 자기표절이라 한다”면서 “특히 글의 제목을 바꿔 가면서 하는 자기표절은 자신의 공적을 부풀리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독고 교수는 “미래를 이끌어 갈 교육인적자원부의 수장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책임을 전가하며 응당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은 교육과 국가를 위험하게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총리가 제자 신모 씨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신 씨는 다중회귀분석을, 김 부총리는 단순빈도분석을 사용했기 때문에 별개의 논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의 것처럼 공공연히 사용하는 행위가 표절”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김 부총리가 중복 보고 사실을 인정하면서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시간을 달라’고 하는데 정작 그가 모시는 대통령은 지금껏 ‘과거청산 없는 미래는 없다’고 강조해 왔다”며 “논문 중복 게재와 같은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김 부총리가) 불감증을 보이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대학원생 박민영 씨는 “제자의 연구 성과나 예술 작품까지 가로채는 교수들이 아직 대학 사회에 남아 있다”며 “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교육 부총리의 모습에 많은 학위 과정 학생들이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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