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쌀은 아깝지 않다

  • 입력 2006년 8월 3일 03시 01분


백약(百藥)이 무효(無效).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사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유엔을 동원해도, 중국의 영향력에 매달려 봐도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선 ‘10자회담’을 만들어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백남순 외무상은 코웃음만 쳤다.

그 대신 늘어나는 건 불길한 소식들이다. 미국과 일본은 대북(對北) 제재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고립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고립되도록 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힐 차관보의 발언은 대화 재개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경고등이다. 북한은 이에 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RF 등 국제회의가 열리는 족족 비난 대상으로 삼고 미국 일본 등 관련국을 불가촉국(不可觸國)으로 몰고 있다. 남한과의 접촉도 하나 둘 끊고 있다.

이 지경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됐는지 중간 결산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 탓, 미국 탓’이라며 남에게 손가락질하기 전에 정부의 잘못부터 찾아야 한다. 누가 더 큰 실패를 했는지 따지는 건 당사자가 할 일이 아니다. 정부 스스로 북핵 해결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한반도에 먹구름이 잔뜩 낀 현실을 모르는 체하면서 타개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첫째, 원칙의 재정립을 제안한다. 정부는 중요한 원칙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도주의적 현안에 대한 대응이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쌀과 비료 대북 지원 중단으로 맞섰다. “미사일은 어느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니 덜컥 인도적 지원을 중단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사일은 북한 정권이 발사했다. 굶주린 북한 주민의 도발이 아니다. 군사적 도발에 인도적 지원 중단으로 맞선 것은 하지하(下之下) 전략이다.

인도주의의 인도(人道)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인도적 지원은 인간의 의무 같은 것이다. 정부가 매년 수십만 t의 쌀을 보내도 대다수 국민이 아까워하지 않는 것은 약간의 전용(轉用)이 있을지라도 결국은 수많은 북한 주민을 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쌀과 비료를 보낼 때마다 인도적 지원임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만 방황하자. 마침 북한이 큰 수해를 당했다. 식량 지원은 재개되어야 한다. 민간단체의 지원 움직임에 편승하면 된다. 그 대신 차제에 ‘조건 없는 인도적 교류 원칙’을 천명하기 바란다. 남북 간 인도적 현안을 조건 없이 풀자는 원칙을 밝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아무 전제조건 없이 지속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권 또한 인도적 차원의 문제다. 아낌없이 식량을 지원하는 마음가짐 그대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군사도발을 있는 그대로 보기 바란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에게 사슴을 말로 여기라고 요구해 왔다. 북한의 핵 개발은 심각한 위협이 아니며 미사일 발사도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지록위마(指鹿爲馬) 화술’로 사태를 호도해 왔다.

북한의 도발에 분칠을 해 준 결과가 무엇인가. 정부가 주문처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반복하는 사이 북한은 핵에서 미사일로 위기를 확산시켰다.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는 “선군(先軍)이 남한을 보호한다”며 정부와 국민을 능멸했다. 엊그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우리가 발사한 아리랑2호 위성을 정탐을 기본으로 하는 군용 위성이라고 규정하며 지역 정세를 격화시키는 ‘엄중한 도발’이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북한을 변하게 하려면 먼저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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