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의 녹슨 창(槍)

  • 입력 2006년 8월 3일 03시 01분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물러나긴 했지만 그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보여 준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와 추궁은 그야말로 ‘야당이기를 포기한’ 수준이었다. 언론의 보도 내용보다 한 치도 더 나가지 못했고 “답변은 나중에 하라”며 훈계조로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논문의 ‘중복 게재’를 따지는 그들의 질문이야말로 한심스러운 ‘중복’이었다.

TV로 실황을 지켜보던 많은 국민이 울분을 터뜨렸다. 인터넷에는 “한나라당의 무기력이 김 부총리를 살려 준다” “억지 답변, 궤변에 끌려 다니며 사태 호도(糊塗)를 도와주고 있다” “신문 짜깁기해서 질문할 거면 뭐 하러 국회의원 하느냐”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청문회보다 더 관심이 쏠린 회의였음에도 한나라당은 여당보다 준비가 부실했다.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를 비난해 온 야당이라면 그 핵심 인물인 김병준 씨가 왜 ‘문제’인지를 제대로 부각시켰어야 했다. ‘공무원인 제자와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 ‘논문 표절 의혹’ ‘연구비 관련 의혹’ 등을 조목조목 따지고 파헤쳐 그가 교육부총리 부적격자임을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입으로는 정권교체를 되뇌면서, 이런 기회를 놓쳐 버리고 오히려 지탄이나 받아서야 제1야당이라고 하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그런 ‘녹슨 창(槍)’으로 정권을 탈환하겠다니,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김 씨의 방패를 뚫기는커녕 기만 살려 주었기에, 사퇴한 김 씨가 오히려 “음모와 모함의 희생자”인 양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김 씨가 이런 식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은 그에 관한 모든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 정권의 ‘코드인사’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대학사회 일각의 잘못된 연구 관행과 타성까지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김 씨가 사퇴했다고 한나라당이 웃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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