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총리의 사퇴 과정을 주도한 국무총리실은 2일 ‘질서 있는 퇴각’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모든 과정이 계획에 따라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김 부총리가 막판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부총리의 사퇴 과정에 대해 이처럼 말이 다른 것은 1일 김 부총리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해명을 쏟아낸 직후부터 사퇴 의사를 밝힌 2일 오전 10시까지 17시간여 동안 김 부총리의 언행과 여권의 반응에 석연찮은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사퇴는 무슨 사퇴냐’=김 부총리는 교육위가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사퇴는 무슨 사퇴냐”고 말했다. 또 교육위가 끝난 뒤 최종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던 한명숙 국무총리도 ‘하루 이틀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입장 표명을 미뤘다. 청와대는 ‘사퇴할 사안이 아니다’고 거들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김 부총리가 ‘버티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총리실은 “교육위는 본인의 학문적 도덕적 의혹에 대하여 해명하기 위해 자청한 것인데 거기서 사퇴를 언급하면 해명이 제대로 알려졌겠느냐”고 말한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도 2일 “교육위 직후 사의를 표명할 경우 명예 회복이 이뤄지겠느냐. 신문에 온통 사의 표명으로 갈 텐데”라고 말했다. 한 총리가 최종 입장 발표를 미룬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란 것이다.
▽한 총리와의 회동 불발?=한 총리가 1일 교육위 직후 김 부총리를 만나려고 했지만 김 부총리가 거부했다. 김 부총리가 2일 한 총리 면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의견을 나눈 것도 의문을 불렀다.
그러나 총리실은 한 총리와의 회동이 무산된 것은 김 부총리의 집 주변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빠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며, 전화 통화를 충분히 했다고 설명했다.
▽김근태 의장의 때늦은 자진 사퇴 촉구=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2일 오전 9시 “김 부총리는 자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이날 오전 6시 반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조찬에서 사의를 표명한 상태였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에게 김 부총리의 사퇴 소식이 전달된 것은 오전 9시 20분경이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 수뇌부조차 그때까지 김 부총리의 자진 사퇴를 몰랐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부총리와 청와대가 계속해서 사퇴를 요구하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불만으로, 사의 표명 사실을 곧바로 전해 주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사전 각본설 vs 국민 우롱=여권이 김 부총리의 ‘명예 퇴진’을 위해 ‘각본’을 짰다는 설명도 있다. 김 부총리는 사의 표명을 한 직후 교육부 인사에게 “30일 국회에 청문회를 요청할 때 이미 결심을 했다”며 “나에 대한 표절 의혹은 학자에게는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고 너무 억울해 해명만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전 각본설이 사실이라면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총리실과 여권 지도부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정 혼란을 방치한 채 국민을 감쪽같이 속이면서 김 부총리에게 해명 기회를 주기 위해 교육부 전체가 나서고 국회를 들러리로 세운 셈이기 때문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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