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실종 1만명說… 복구 엄두도 못내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민간단체 긴급 구호품 수송불교 정토회의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이사장 법륜 스님)가 북한에 보내는 수해 지원 물품이 3일 인천항에서 선적되고 있다. 한국JTS는 밀가루 100t, 라면 1250상자 등 1억2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북한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 통해 평남 양덕군에 전달키로 했다. 인천=강병기 기자
민간단체 긴급 구호품 수송
불교 정토회의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이사장 법륜 스님)가 북한에 보내는 수해 지원 물품이 3일 인천항에서 선적되고 있다. 한국JTS는 밀가루 100t, 라면 1250상자 등 1억2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북한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 통해 평남 양덕군에 전달키로 했다. 인천=강병기 기자
지난달 집중호우로 북한이 본 피해 규모가 상상외로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100년래의 폭우’로 부르고 있다.

▽사망·실종 1만 명 설(說)=3일 일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평안남도 성천군 르포 기사에서 “3일간 285mm의 호우가 내리면서 전체 가구수의 13%가 살던 1973동, 4446가구가 피해를 보았고 이 중 616동은 물에 떠내려갔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3860정보(3828ha)의 농경지가 피해를 보고 수십 km의 도로와 11개의 다리가 완전히 파괴됐다”며 “이웃 양덕과 신양은 피해가 더 크다”고 보도했다.

북한지원단체인 ‘좋은 벗들’도 2일 소식지를 통해 “7월 초부터 퍼부은 장맛비로 북한에서 현재까지 사망·실종자만 4000여 명이고, 최종적으론 1만 명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수재민은 130만∼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좋은 벗들’ 소식지가 전하는 홍수 피해는 참담 그 자체다. 지난달 16일 강원도 금강군에서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백 명이 실종되고 논밭이 수렁으로 변해 뻔히 보이는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도 200여 구의 시신이 수습됐다. 불과 18시간 동안 448mm의 폭우가 쏟아진 평남 양덕, 신양, 맹산, 함남 요덕 등 4개 군에서만 사망·실종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주민 대다수는 토굴과 초막에서 지내고 있다. 거의 모든 복구 작업은 손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수해지역에선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으나 의약품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이번 폭우로 북한의 동서지역을 잇는 유일한 철도인 평양∼나선 간 평라선의 교량과 터널이 무너져 내려 비상구호미 수송도 못할 상황에 처했다. 두 달 안에는 정상적인 열차운행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량 아사 우려=미사일 발사로 점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북한 당국은 이번 홍수로 내부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게 됐다. 농경지만 10만 ha 이상 유실되거나 물에 잠겨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풍년이 들었던 지난해에도 100만 t 이상의 식량이 부족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미사일 사태로 남측뿐 아니라 혈맹으로 자처하던 중국과의 관계까지 소원해져 대량 지원을 기대할 데가 없는 상황이다.

또다시 주민들에게 1990년 중반의 대량 아사 위기 때처럼 ‘고난의 행군’을 호소하는 것도 위험하다. 자칫 모든 주민이 정권에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 북한은 10년 사이 벌써 두 번이나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이 시키는 대로 가면 점점 더 험난한 수렁이고 고난이니 그 반대로 가야 한다”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최근 전화로 접촉한 한 북한 주민은 “마을에는 한숨뿐인데 인근 군부대는 준전시상태라고 밤낮 훈련만 하고 있다”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이젠 갈 데까지 다 갔다’, ‘곧 뭔 일이 터진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위기감을 의식한 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 달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산악지역 군부대 피해 커… ‘요덕 수용소’도 침수

이번 대홍수는 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의 군사력에도 커다란 피해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피해 실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요 피해지역들은 대부분 군부대 밀집지역이다.

가장 큰 피해를 본 평안남도 양덕군과 신양군은 산악이 험준해 인민군의 주요 훈련기지로 사용되는 곳. 이곳에는 기계화 부대들과 함께 정찰국 등 특수부대들이 주둔해 있다.

최전선 지역인 강원도 평강군과 김화군, 창도군, 금강군, 고성군은 “돌 열개를 하늘로 던지면 아홉 개가 군대 머리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단급 부대들이 밀집된 곳. 개성과 황해남도 청단, 배천, 해주 등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와 평안남도 지역은 대다수 군 병영이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 아래에 위치해 있어 산사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의 병영 뒷산은 벌거숭이 상태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폭우가 가장 심했던 지난달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자 즉각 준(準)전시 체제를 선포했다. 준전시체제에서는 모든 군인이 진지에 들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수해가 닥치면 인명 손실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장비와 물자 손실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1960년대부터 전국 요새화를 표방하며 곳곳에 갱도를 파놓고 전투장비와 전략물자를 비축했기 때문.

홍수로 인한 군의 식량난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평상시에도 북한군은 보급 부족으로 ‘허약환자’들이 속출한다. 강원도의 경우 보급로는 철령, 마식령과 같은 험준한 산을 끼고 있다. 이곳 도로는 비만 오면 끊기는데 복구하기도 매우 어렵다.

군이 자체로 농사를 짓는 이른바 ‘부업기지’들도 홍수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좋은 벗들’ 소식지는 2일 함남 요덕군 구읍리에서 학교와 아파트 2동만 남고 모두 홍수에 쓸려 내려갔다고 전했다. 이곳은 ‘요덕수용소’로 알려진 15호 정치범수용소 수감시설과 경비원들의 사택이 몰려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홍수에 요덕수용소가 큰 피해를 보고, 수용돼 있던 정치범들이 대거 탈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사일 때문에…

수해를 입은 북한을 돕는 문제를 놓고 민간단체들과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데 반해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불교 정토회의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는 3일 라면과 밀가루, 의류 등 1억2000만 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실은 배를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출항시켰다. 또 4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신의주를 거쳐 수해 지역에 도착하는 의약품과 모포, 그릇 등 생필품을 보내고 9일엔 인천항에서 밀가루 100t을 실은 배를 남포항으로 추가로 보낼 계획이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이날 대북 지원을 위한 긴급 모금활동에 나서서 일단 1억 원 상당을 조성하기로 했다.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과 한국희망재단 상임이사인 김홍진 신부 등 사회인사 10명은 3일 성명을 통해 “한국 국민과 정부, 국제사회는 참혹한 수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나라당도 이날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의약품 생필품 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이 “동포애적 입장에서 체제와 인민을 구분해 한나라당이 주도적으로 기초적 구호에 나서자”고 제안해 이에 따라 방침을 정한 것.

반면 정부는 북한이 핵 및 미사일 문제를 풀어 나가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쌀 차관 제공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것은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데 대한 정부 차원의 제재 조치”라며 “북측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지원을 재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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