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 南 국립묘지 갔는데…” 예고없이 강행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평양 대성구역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있는 혁명열사릉. 1975년에 조성된 혁명열사릉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 김정숙 등 북한 정권의 핵심 1세대 140여 명이 묻혀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평양 대성구역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있는 혁명열사릉. 1975년에 조성된 혁명열사릉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 김정숙 등 북한 정권의 핵심 1세대 140여 명이 묻혀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평양에서 열린 ‘5·1절(노동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5월 1일 애초 방북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던 혁명열사릉 참배를 강행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낳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단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장관급회담 채널을 통해 방북하는 남측 인사들이 혁명열사릉, 금수산기념궁전, 애국열사릉 등 이른바 ‘3대 혁명 성지(聖地)’에 참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북측의 집요한 참배 요구=지난달 11∼13일 부산에서 열렸던 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권호웅 북측 대표단장은 8·15평양통일대축전 때 남측 대표단의 방북을 제의하면서 “상대방의 체제와 존엄을 상징하는 성지와 명소, 참관지들을 제한 없이 방문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해로 취소되긴 했지만 올 평양축전부터는 방북하는 남측 인사들이 자유롭게 북측의 이른바 ‘성지’를 참배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셈이다.

북측 대표단이 지난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았고, 올해 6월 광주에서 열렸던 6·15통일대축전 때도 자발적으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으니 남측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보안법과의 충돌 우려 및 남측 사회 내 이념적 지향에 따른 ‘남남갈등’을 우려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북측은 고도로 훈련된 ‘대남일꾼’들만이 남한에 오지만 남한에선 연간 10만여 명의 ‘일반인’이 북한을 찾고 있는 상황이어서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지적이다.

▽찬양·고무죄 적용 가능할까=민주노총 간부들의 혁명열사릉 참배 행위가 국가보안법 7조 1항의 찬양·고무죄에 해당하는지가 논란거리다.

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방북에 앞선 교육과정에서 혁명열사릉에 대한 참배를 금지한다고 밝혔고, 실제 참배를 하려던 순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를 지적하며 만류했지만 이들은 참배를 강행했다. 더구나 민주노총 측은 북측도 남측의 국립묘지에 참배했는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주장하는 등 자발적으로 참배했다는 점에서 국보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참배 행위 자체만으로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은 불가능하다”며 “관건은 참배 당시 어떤 행동을 했느냐와 참배 의도가 북한체제를 찬양할 내심이 있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뒤늦게 참배를 주도한 민주노총 인사와 함께 참관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측 인사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측의 참배를 말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1개월 방북제한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는 통일부 등의 공무원도 있었지만 그들도 민주노총을 말리지 못했다.

▽혁명열사릉은?=1975년 10월 평양 대성구역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건립된 혁명열사릉은 9만여 평에 묘지 면적은 1만2000여 평으로 조성돼 있다. 1985년 확장공사를 한 혁명열사릉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생모인 김정숙과 김책 전 부수상, 김일 전 부주석 등 북한 정권의 핵심 1세대 140여 명이 묻혀 있다. 각 묘비 위에 반신상이 조각돼 있고, ‘교양마당’에는 김일성 주석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통일부 석달 넘게 ‘쉬쉬’… 6939만원 지원까지 ▼

통일부는 5월 1일 민주노총 소속 방북단 일부가 ‘북측 성지’인 혁명열사릉을 참관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3개월이 넘도록 알리지 않아 은폐 의혹을 사고 있다

통일부는 사건 발생 두 달여가 지난 7월 5일 참배를 주도한 민주노총과 이들과 함께 참관했던 한국노총 소속 간부 등 총 14명에 대해 ‘1개월 방북제한’ 조치를 취했지만 이 사실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가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5월에 예정됐던 경의선·동해선 철도시험운행과 곧이어 진행됐던 6·15 민족통일 대축전 행사 등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관지 제한 철폐 요구는 남북장관급회담 때마다 북측이 의제 1순위로 올릴 정도로 애착을 보이고 있는 사안. 남측이 혁명열사릉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양대 노총을 징계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측이 어떤 ‘몽니’를 부릴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양대 노총 방북단에 사전교육을 통해 위법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위법이 발생한 뒤 정해진 행정절차에 따라 제재를 가했다. 행정처분을 받은 당사자가 있는데 통일부가 먼저 나서서 이 사실을 공표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한국노총 간부 14명에 대한 ‘1개월 방북 제한’은 사실상 의미 없는 처벌이다.

더구나 통일부는 비록 삭감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에 대해 당초 지원키로 했던 방북 행사경비 6939만 원까지 사후에 지급했다. 통일부는 “방북단 150명 중 3분의 1인 50여 명이 참배한 것을 감안해 해당 비율만큼 삭감했다”고 해명했다.

일부에서는 통일부가 코너에 몰린 이종석 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 처리를 미뤘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은 7월 5일 미사일 발사 직후인 11일부터 열렸던 19차 장관급회담에서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등의 망언을 해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했던 이 장관을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했다. 통일부가 노총 방북단에 대해 조치를 취한 것은 7월 5일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민노총 “통일부 행정처분 이해못해” 되레 반박

민주노총은 북한 혁명열사릉 참배에 따른 방북 제한 등 통일부의 행정조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3일 “북한 측에서 방문지를 안내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초청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5월 1일 평양 대성산 남문에서 5·1절 기념행사를 참관할 무렵 북한 대표단이 근처에 있는 혁명열사릉으로 남측 대표단을 안내했다. 방북에 동행했던 통일부 직원 등이 이를 알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혁명열사릉을 방문하려는 참가자들을 제지하고 나서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다른 방북 단체들은 정부 관계자의 권유로 혁명열사릉 방문을 포기했지만 민주노총 소속 지도부와 참가자 50여 명은 “문제될 게 없다”며 참배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시대가 어느 때인데 국가보안법 위반을 말하느냐”며 “오히려 민간단체끼리의 교류를 감시하기 위해 북한까지 따라온 정부 관계자의 행태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는 “뒤늦게 내린 통일부의 행정 처분은 구시대적 횡포”라며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혁명열사릉을 참배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행정조치 처분을 받은 한국노총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통일부는 ‘한국노총 지도부가 민주노총과 함께 행사를 감독하는 입장에서 참가자들의 참배를 막지 못했다’며 연대 책임을 묻고 있다”며 “오히려 그 자리에서 알고도 참배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통일부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자문 변호사를 통해 통일부의 행정 조치에 대해 강력히 이의 제기를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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