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구태적 정치패턴 답습” 與 “대통령 탈당하나” 촉각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열린우리당과 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열린우리당과 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3일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사의 표명 과정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청와대는 김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게 된 것은 언론과 열린우리당의 ‘여론재판 구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언론과 정치권을 탓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의 불만은 주로 여당을 향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여론에 편승해’ 김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폐습’을 재현하며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청와대가 당-청 관계와 관련해 중대 결단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청와대를 압박해 김 부총리 사의 표명을 관철시킨 자신감을 바탕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법무부 장관 기용에 대해서는 야당을 앞질러 “측근이라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실장의 발언을 접한 뒤 사태를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저녁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이 실장의 ‘여당 성토’ 발언과 관련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2시간여 회의를 마친 참석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없이 헤어졌다.

▽대통령 탈당 결심?=이 실장은 이날 오후 갑자기 춘추관 기자실을 찾아 김 부총리의 거취 문제, 문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보인 태도를 “구태적 폐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작심한 듯한 직설적 어조였다.

더구나 이 실장의 발언은 이날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직후 나온 것이다. 그 배경과 함의가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이 실장은 열린우리당 등의 김 부총리 사퇴 요구에 대해 “모든 걸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걸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태적 정치 패턴”이라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문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 여부에 대해서는 “꼭 누구라기보다 인사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종합적인 수행을 위해 판단할 문제”라고 말해 여당이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 실장은 이런 식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면 단순히 대통령의 레임덕이 문제가 아니라 국정운영이 곤란해진다는 말도 했다. 이는 국정운영을 방치할 수는 없는 만큼 열린우리당의 요구대로 끌려 다닐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이 실장은 여당에서 제기되는 당-청 관계 재정립 주장에 대해 “5년 단임제 아래서 이맘때면 항상 나오던 관행적 패턴이다. 당-청 분리로 당의 지지율이 높아진 적 있느냐”고 지적하며 “이런 인식이 좋은 결실을 거둔 적이 없다”고 공박했다.

열린우리당이 ‘당 주도’를 외치며 청와대를 공격하는 상황을 수용할 수 없으며, 열린우리당이 계속 청와대에 이를 강요할 경우 대통령이 먼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 침해는 불용?=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 실장의 발언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는 ‘문재인 법무부 장관 반대’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오후 들어서는 잦아들었다.

원혜영 사무총장은 “이 실장의 발언을 충분히 이해하며 동의하는 부분도 많다. 대통령의 유일한 권한은 인사권인데 그걸 본원적으로 제약한다면…”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당직자는 “혹시 노 대통령이 탈당하는 것 아닌가 해서 청와대에 확인을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권에 대해 당이 도전하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판단에서 이 실장의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한 의원은 “최근 몇몇 정신 나간 의원들이 대통령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일로 탈당이란 엄청난 일을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처럼 대통령의 탈당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막상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열린우리당의 존립 자체가 중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이라는 중심축이 사라질 경우, 향후 정계개편 등의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단합된 지분을 확보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당 내에는 상존한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청와대와 타협하고 공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게 현재의 분위기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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