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김근태 의장은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이 여론에 편승해 대통령을 공격하는 폐습과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전날의 청와대의 공개 힐난을 모르는 듯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당은 공동 운명체다. 당-청 관계도 상호 존중과 신뢰에 입각해 소통한다면 국정 운영 파트너로서 성공할 것”이라며 덕담만 했다.
두 사람은 전날까지 문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앞서 두 사람은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밀어붙여 사의 표명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3일 오후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의 폐습과 구태’를 비난하며 “그런 식으로 해서 당의 인기가 올라간 사례는 없다”고 일갈하자 당 지도부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한 재선 의원은 이날 “대통령에 대해 할 말은 하고 당-청 관계를 바로잡아 당 우위를 확실히 하겠다고 호언하더니, 청와대가 한마디 했다고 쑥 들어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공에 이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후퇴’가 여권에서는 새로운 내부 갈등을 낳고 있다.
일부 ‘친노(친 노무현 대통령)’ 의원이 청와대에 가세해 당 지도부를 공격하고 나섰고, ‘반노(반 노 대통령)’ 의원들은 그들대로 청와대와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친노계 의원 및 당원 모임인 ‘국민참여 1219’는 이날 논평에서 “당 내부의 인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당 의장과 지도부가 대통령 인사권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며 “김 의장과 지도부가 독재 수구세력에 당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친노 모임인 참여정치실천연대의 이광철 의원은 “인사는 누가 뭐래도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고,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은 “당 의장은 대통령이 하는 인사에 넌더리가 난다면 아예 탈당을 권하라”고 비아냥댔다.
김 의장에 대한 당내 온건론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섣불리 나섰다가 불리한 국면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김 의장이 평소에는 신중한 분인데, 이번에는 딱 떨어지지 않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너무 나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일찌감치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원은 강경론을 내놓은 청와대와 물러선 당 지도부를 싸잡아 비난하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당직자는 “당은 ‘민심이 이렇다’고 전달했을 뿐인데 청와대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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