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쇼’라고 해도 좋다

  • 입력 2006년 8월 7일 03시 07분


한나라당 사람 같지 않은 이가 한나라당에는 더러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손학규다. 그는 6월 30일 경기도지사 이임식을 마치자마자 ‘100일 민심대장정’에 올랐다. 6일로 38일째다. 호남 충청 강원지역을 거쳐 영남지역을 돌고 있다. 추석 다음 날인 10월 7일 끝난다. 1단계로 농촌지역, 2단계로 중소도시, 3단계로 대도시를 순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가 처음 민심대장정 구상을 밝힌 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다. 5·31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6일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인터뷰할 때 그는 퇴임 후 거취와 관련해 이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권력이 여의도가 아니라 민심의 바다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이건 쇼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는 한나라당의 다른 대권주자인 박근혜 이명박에 비해 당내 위상과 국민 선호도에서 크게 처진다. 도지사 재임 시 지구촌을 누비며 141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건만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국민의 선택을 묻기에 앞서 당내 경선에서 이기는 것부터가 버거워 보인다. 그러니 국민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일 터이고, 그래서 구상한 게 민심대장정 아니겠는가. ‘쇼’라는 생각을 떠올린 건 그 때문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그는 스스로의 약속을 실천하러 대장정에 올랐다. 그러나 그 자취를 살펴보면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게 전부가 아닌 듯하다. 밭에서, 갯벌 양식장에서, 공장에서, 수해지역에서, 광산에서 국민과 몸을 부대끼며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있다. 그는 “체험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말한다. 국민과 함께 생활하며 민심을 듣는다는 얘기다.

그의 쇼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꽤 있다. “처음엔 쇼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쇼라도 보기 좋다”는 게 그들의 평가다. 곳곳에서 동참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탄가루를 뒤집어쓴 그의 시꺼먼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미미하지만 여론조사 지지율도 한 달 사이 조금 올랐다. 그의 ‘쇼’에 사람들이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력부터가 보통의 한나라당 사람들과는 다르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고 이후 30대 중반까지 노동운동, 빈민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수배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 탄광근로자와 용접기술자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진짜 차이가 있는 점은 국민과 숨결을 같이하려는 바로 지금의 모습일 것이다.

비단 한나라당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는 일반 국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엄격한 도덕성과 자기 절제, 모범적인 언행,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수해 때 일반인처럼 휴가가고 골프 좀 한 게 비난받을 일이냐고 불평한다면 자격이 없다. 다른 학자들처럼 논문 이중 게재 좀 했기로 무슨 큰 잘못이냐고 따진다면 역시 자격 미달이다.

그런 점에서 손 전 지사의 민심대장정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러모로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나마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일이다. 정치적 목적을 띤 쇼일지언정 이런 쇼라면 많이들 할수록 좋다. 쇼라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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