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먼저 “인사권이 솔직히 내게 남은 유일한 권한 아니냐”고 말문을 떼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의원들의 발언을 일일이 메모하며 들었다.
노 대통령은 인사권 논란과 관련해 당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당-정-청 고위 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하는가 하면, 3가지 합의안을 정리해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참석자들이 박수로 동의하자 노 대통령은 비로소 얼굴을 폈다.
▽“대통령 인사권 존중”=노 대통령은 “(당에서) 청와대에 문제 있다고 하지만 비선정치를 한 적도 없고 특정 측근에게 권력을 과도하게 위임한 적도 없다. 장담컨대 임기 마지막까지 권력형 게이트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책임지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인사권을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이석현 의원 등 일부가 “인사문제에 대해 당이 청와대에 건의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원론적인 문제 제기를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의 발언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김근태 의장이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며 “당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공개된 데 대해서는 실수가 있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인사권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했으며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대통령 인사권은 존중돼야 하며 당의 의견을 전달할 때는 비공개로 해야 한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장관시키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주요 인사에 대해 지도부와 상의하겠다”며 당 쪽의 체면을 살려 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로써 인사권 문제에 관한 당-청 논란은 일시적으로 봉합된 셈이다.
▽‘문재인 법무부 장관 기용’ 문제는 미결=열린우리당 쪽의 설명에 따르면 이날 김 의장은 “5·31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표현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법무장관 기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기용 여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문 전 수석을 ‘옹호’하는 데 주력했다. 노 대통령은 “누가 시킨다, 안 시킨다고 얘기했느냐” “미국 대통령도 측근을 계속 중용하지 않느냐” “자꾸 ‘코드인사’라고 하는데 솔직히 쓸 만한 사람은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이 5·31지방선거 기간에 나온 문 전 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을 문제 삼는 데 대해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 당시 (부산의) 호응이 없으니까 ‘대통령도 나도 부산 출신인데 왜 이렇게 미적지근하느냐’는 뜻으로 말한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참석자들은 문 전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여부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간담회가 끝난 뒤 연락이 닿은 인사 8명 중 5명은 “노 대통령이 문 전 수석을 옹호했지만 그게 장관에 기용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고, 2명은 “기용을 강행할 것 같다”고 했다. 1명은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이석현 의원은 “막상 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참석자 중 상당수가 ‘기용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장선 의원은 “문 전 수석을 옹호한 것은 측근을 기용하면 왜 안 되느냐는 일반적 항변으로 들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는 “노 대통령은 문 전 수석이 장관으로서 괜찮다는 식의 얘기를 계속한 것 아니냐”며 “임명을 강행할 의지가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고 해석했다.
열린우리당 측이 이날 청와대에서 ‘대통령 인사권 존중’을 다짐하고 나오긴 했지만, 문 전 수석 문제에 관한 한 여전히 ‘장관 기용 반대’ 기류가 강하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문 전 수석의 기용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될 경우 당-청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설사 지도부가 ‘문재인 카드’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일반 의원들의 설득은 별개 문제다. 한 초선 의원은 “문 전 수석을 장관으로 내정하는 순간 당-청 전쟁은 다시 시작”이라고 했다.
6일 청와대 오찬 참석자 (총 22명, 배석자 제외) | |
청와대(4명) | 노무현 대통령,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 정태호 대변인 |
정부(1명) | 한명숙 국무총리 |
열린우리당(17명) | 비상대책위원(8명): 김근태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박명광 이강래 정동채 정장선 이석현 윤원호 의원 상임고문(3명):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신기남 전 의장 주요 당직자(6명): 강봉균 정책위의장, 원혜영 사무총장, 이계안 의장비서실장, 우상호 대변인,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 |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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