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정부는 이번에 사면된 정치인의 범위를 ‘대선자금 관련자’로 명시했다. 그러나 복권된 여택수 전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은 대선 이후인 2003년 9월경에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구속 기소됐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 이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모두 당에 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대선자금 관련자는 아니다.
신계륜 전 의원도 개인적으로 받은 정치자금으로 형사처벌됐지만, 대선자금 정치인으로 분류돼 사면 복권됐다. 정부 관계자는 “신 전 의원은 돈을 받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조직에서 활동했고, 돈은 모두 대선을 위해 쓰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8·15 특사 때 열린우리당 정대철 상임고문이 포함된 데 대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정 고문의 혐의엔 뇌물죄가 포함됐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정치자금의 성격이 강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과 비슷한 논리다. 법원 판결로 규정된 사안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다르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논리라는 지적이다.
▽추징금 기준은 무엇=사면복권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현재까지 납부한 추징금은 전체 12억 원 중 8억 원. 정부 관계자는 “서 전 대표가 전체 추징금의 50% 이상을 납부한 데다 최근까지도 꾸준히 추징금을 내 온 점이 감안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추징금은 앞으로 갚아 나가면 된다고 했다. 정부가 추징금 납부를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내세운 것은 지난해가 처음으로, 당시 정대철 상임고문 등 여당인사는 서둘러 추징금을 내고 사면됐지만 서 전 대표는 추징금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사면 때 서 전 대표가 제외됐던 것은 ‘야당 인사이기 때문’이란 논란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경제사범 사면도 들쭉날쭉=정부는 경제인 사면에서도 개인적 이익을 위한 범죄나 대출사기 등으로 처벌된 경제인은 제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17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80억 원을 골동품 수집과 별장 보수 등에 사용했으며, 대출사기를 통해 계열사에 1442억 원을 부당지원한 기업인은 포함됐다. 더구나 그가 징역 4년형이 확정된 것은 겨우 한 달 반 전인 6월 27일의 일이었다.
▽막판까지 오락가락=여당 인사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실형이 확정된 김연배 전 한화그룹 부회장은 10일 오전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됐으나 청와대의 강한 반대로 밤 12시 무렵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청와대가 반기지 않는 특정 여당인사와 가깝다는 소문이 있다. 잔여 형기 2분의 1(1년 3개월)을 감형 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경우 감형 여부를 놓고 내부 논란이 벌어져 끝까지 오락가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권 전 고문의 감형을 놓고 청와대가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8·15 특별사면 주요 인사 명단 | |
불법대선자금 사건 관련자(5명) | 안희정(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복권) 신계륜(전 열린우리당 의원·사면복권) 여택수(전 청와대 행정관·복권) 김원길(전 한나라당 의원·복권) 서청원(전 한나라당 의원·사면복권) |
70세 이상 고령자(65명) | 권노갑(전 민주당 의원·감형) 강태운(전 민주노동당 고문·사면) 김용산(전 극동건설 회장·사면) 이성호(김대중 전 대통령 처남·사면) 외 61명 |
분식회계, 부실계열사 부당지원으로 처벌 받은 기업인(17명) | 경창호(전 두산기업 대표·사면복권) 송정호(전 두산산업개발 이사·사면복권) 최상순(한국화약그룹 고문·사면복권) 외 14명 |
부안 방사성 폐기물처분장 반대 시위 관련자(55명) | 김재관(남부안 농민회장·복권) 김종성(대책위 집행위원장·사면복권) 외 53명 |
총 142명 |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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