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로 임기가 만료된 정연주 KBS 사장의 후임이 두 달이 되도록 정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KBS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정 사장을 연임시키려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KBS 사장은 KBS 이사회에서 후보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KBS 노조는 최근 구성된 KBS 이사회에 대해 “친여 인사들이 대부분으로, 정 사장 연임을 위한 청와대의 포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KBS 사장 인사에 개입했다. 2003년 3월 서동구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언론고문이 사장으로 임명되자 외압 논란이 일었다. 당시 KBS 이사회 지명관 이사장은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고 서 사장은 취임 9일 만에 사퇴했다.
그해 4월 정 사장이 임명되자 지 이사장은 “정 사장 선출 과정에 청와대 측이 개입했다”며 “서 전 사장을 밀었던 청와대 라인에서 이번에는 정 사장을 밀었다”고 털어놨다.
정 사장 아들들의 병역 기피 문제 등 도덕성 문제까지 겹쳤지만 청와대는 임명을 밀어붙였다. KBS 사장에 대한 청와대의 집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방송위원회 위원 인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방송위는 방송 전반에 관한 사항의 심의 의결과 방송 사업자 허가. KBS 이사 추천권, 방송문화진흥회 교육방송(EBS) 이사 임명권 등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원 9명은 법적으로는 국회의장이 3명,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3명, 대통령이 3명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3명, 여당이 3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하는데 청와대가 여당 몫까지 인선한다. 지난달 제3기 방송위원이 선정됐을 때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다 했지 우리가 뭘 했겠느냐”고 토로했다.
대통령이 방송계 인물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방송위원 6명은 홍보수석실이 추천한 인사들 위주로 선정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2004년 권영만 당시 대통령보도지원비서관을 EBS 부사장으로 임명했을 때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EBS PD협회와 노조는 “낙하산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며 “권 부사장의 임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권 부사장 임명은 청와대의 뜻대로 관철됐다.
방송계에서는 EBS 사태와 인사문제가 불거진 아리랑TV나 국정홍보처 산하의 K-TV가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에는 이런 부적절한 인사 시스템의 탓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청와대가 방송계 인사에 간여하려는 것일까. 유재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는 “결국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며 “방송위원회도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움직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방송계 구조도 문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큰 무리가 없는 한 (청와대의 요구를) 수용해야 조직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 기본적 태도”라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같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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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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