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볼것 없다” 작전권 속전속결 손떼기

  • 입력 2006년 8월 28일 03시 00분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이달 중순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에서 하루라도 빨리 손을 떼겠다는 방침이 확고한 듯하다.

각종 첨단 전력 보강을 비롯해 한국군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2012년 이전에는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 힘들고 또 환수하더라도 제대로 행사하기 곤란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이 ‘2009년안’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기 평택시 이전과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시기를 고려하고 한국군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게 미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시작전권을 가능한 한 빨리 한국군에 넘겨주는 게 미국에 유·무형의 실익을 가져다 준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미국의 책임 축소, 한국의 비용 증가=우선 전시작전권을 이양하면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돼 한반도의 방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사는 한미동맹의 상징인 반면 한국의 방어 책임을 떠맡게 된 미국은 이를 위해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부담을 져야 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방위 책임과 비용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 등을 통해 한미동맹의 재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계기로 미국이 한미동맹을 매년 정기적인 공동훈련만 몇 차례 실시하는 태국과 필리핀 수준으로 격하해 방위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비율을 40% 이하에서 50%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작전권을 가져가 많은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에 걸맞게 비용도 많이 부담하라는 게 미국 측의 논리라는 것.

럼즈펠드 장관은 윤 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를 ‘공평한(equitable) 수준의 방위비 분담’으로 표현했다. 전시작전권 환수에 따른 추가 재정 부담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반미 감정의 불씨 차단=한국에서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된 전시작전권 문제가 반미 감정의 또 다른 꼬투리가 되기 전에 사전 차단하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대미(對美) 군사 주권의 회복으로 천명해 온 만큼 내년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반미 감정의 불씨가 될 만한 사안들은 조기에 정리하겠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라는 것.

군의 한 소식통은 “미국이 2009년을 고집하는 것은 전시작전권 문제가 반미 분위기를 부추기는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 데 따른 불쾌감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활용=전시작전권의 이양으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빼거나 들여보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올해 초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합의한 만큼 전시작전권이 이양되면 수시로 한반도를 들락날락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방위 책임을 더는 것과 함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방안에 고심하던 미국은 노 대통령이 ‘자주 군대’를 명분 삼아 전시작전권 환수를 내세우자 이를 즉각 수용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 2009년 고수 가능성 높아”=국방부는 다음 달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와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때까지 미국을 설득해 ‘2012년안’을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이 전력 보강과 군 조직 개편을 통해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2009년은 너무 이르기 때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차두현 박사는 “한국의 2012년 안에 대해 미국이 각종 군사적 지원을 전제로 2009년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미 간 협의를 통해 2009년과 2012년 사이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경우 양측은 전시작전권 이양의 목표 연도를 설정한 뒤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국군의 능력을 고려해서 추진한다’는 단서를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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