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첨단 전력 보강을 비롯해 한국군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2012년 이전에는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 힘들고 또 환수하더라도 제대로 행사하기 곤란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이 ‘2009년안’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기 평택시 이전과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시기를 고려하고 한국군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게 미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시작전권을 가능한 한 빨리 한국군에 넘겨주는 게 미국에 유·무형의 실익을 가져다 준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미국의 책임 축소, 한국의 비용 증가=우선 전시작전권을 이양하면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돼 한반도의 방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사는 한미동맹의 상징인 반면 한국의 방어 책임을 떠맡게 된 미국은 이를 위해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부담을 져야 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방위 책임과 비용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 등을 통해 한미동맹의 재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계기로 미국이 한미동맹을 매년 정기적인 공동훈련만 몇 차례 실시하는 태국과 필리핀 수준으로 격하해 방위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비율을 40% 이하에서 50%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작전권을 가져가 많은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에 걸맞게 비용도 많이 부담하라는 게 미국 측의 논리라는 것.
럼즈펠드 장관은 윤 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를 ‘공평한(equitable) 수준의 방위비 분담’으로 표현했다. 전시작전권 환수에 따른 추가 재정 부담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반미 감정의 불씨 차단=한국에서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된 전시작전권 문제가 반미 감정의 또 다른 꼬투리가 되기 전에 사전 차단하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대미(對美) 군사 주권의 회복으로 천명해 온 만큼 내년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반미 감정의 불씨가 될 만한 사안들은 조기에 정리하겠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라는 것.
군의 한 소식통은 “미국이 2009년을 고집하는 것은 전시작전권 문제가 반미 분위기를 부추기는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 데 따른 불쾌감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활용=전시작전권의 이양으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빼거나 들여보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올해 초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합의한 만큼 전시작전권이 이양되면 수시로 한반도를 들락날락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방위 책임을 더는 것과 함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방안에 고심하던 미국은 노 대통령이 ‘자주 군대’를 명분 삼아 전시작전권 환수를 내세우자 이를 즉각 수용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 2009년 고수 가능성 높아”=국방부는 다음 달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와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때까지 미국을 설득해 ‘2012년안’을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이 전력 보강과 군 조직 개편을 통해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2009년은 너무 이르기 때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차두현 박사는 “한국의 2012년 안에 대해 미국이 각종 군사적 지원을 전제로 2009년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미 간 협의를 통해 2009년과 2012년 사이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경우 양측은 전시작전권 이양의 목표 연도를 설정한 뒤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국군의 능력을 고려해서 추진한다’는 단서를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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