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북한 보기 진실게임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요즘 사필귀정(事必歸正)과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자주 생각한다. 꼬이기만 하는 남북관계에 대해 걱정할 때마다 두 단어의 뜻을 되새기게 된다.

사필귀정은 무엇인가. 장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북한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한 논란이 분분했다. 북한을 끌어안아야 할 혈육으로 볼 것인가, 변화시켜야 할 동족으로 볼 것인가, 공존해야 할 이웃으로 볼 것인가, 타도해야 할 적으로 볼 것인가. 논란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마침내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현재의 먹구름이 북한발(發)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못할 단계에 도달했다.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핵무기 1, 2개를 갖고 있는 걸로 추정한다”고 고백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통일부 장관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고,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만 있으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이 대포동2호를 비롯한 미사일 7발 발사 도발, 두 차례의 서해 도발처럼 분명한 위협으로 우리에게 닥쳤다는 증언들이다. 우리가 지금 머리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을 이고 있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처지에 빠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발언들이다.

평화번영정책을 외치던 이 정부 고위층의 입에서 그런 말이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한 자책이나 후회는 없다. 다른 실정(失政)에 대해서는 잘도 사과를 하면서 국가안위가 걸린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위협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 정부. 병은 주면서 약은 내놓지 못하는 정부. 분명하게 확인된 북한의 속성처럼 이 정부 권력층의 책임 수준도 들통 나고 말았다.

전화위복은 이 정부의 거짓말이 드러나 진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주창자들은 북한에 햇볕을 쪼이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했다. 햇볕정책을 계승한 현 정부도 대북지원이 북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을 핵실험 카드를 휘두르는 무법자로 만드는 것이 정부가 기다리던 변화란 말인가. 대북지원은 통일비용, 평화비용이라는 말도 많이 했다. 그 말이 옳다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대북 억지력 증강용 국방비는 줄어야 앞뒤가 맞는다. 햇볕정책이 옳은 선택이었다면 8년 반이나 지속된 지금쯤은 국방 예산의 대폭 증액 대신 군비증강은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이 정부의 무능도 드러났다. 핵문제를 떠안고 출범한 이 정부가 3년 반 동안 해결은커녕 사태를 더 악화시켰으니 남 탓, 상황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무능부터 통감해야 한다. 핵문제에 매달리느라 잃어버린 국정(國政)의 기회비용은 어디에서 벌충할 것인가.

김경원 전 주미대사는 이틀 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전체회의 석상에서 건배사를 하며 “한반도의 운명은 결코 낙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리얼리티(현실)입니다”라고 했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국제 문제 최고 전문가가 새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가 출범하는 잔칫날, 그것도 덕담으로 채우는 게 관행인 건배사를 하며 비관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변할 수 없는 북한 정권을 변할 수 있는 상대로 믿으며 국민을 오도한 정책 실패의 결과가 이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진실과 거짓의 대결이다. 늑대가 양의 탈을 쓴다고 양이 되지는 않는다. 늑대를 양처럼 다뤄 양으로 변하게 할 수도 없다. 누가 거짓 편에 서서 늑대를 양이라고 계속 우기는지 지켜볼 일이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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