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정부는 2004년 8월 한국 고대사에 대한 정치 쟁점화 금지를 약속한 한중 간 ‘구두양해’ 이후 중국에 정치적 외교적 대응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엉터리 사태 파악
국무조정실은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작업에 따른 한국사 왜곡 연구결과들이 한국 언론을 통해 드러나기 직전인 8월 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2006년 8월 현재 중국 중앙정부 및 당-정-관영언론 차원의 추가 역사 왜곡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이 공개한 ‘중국 역사 왜곡 작업 실태 파악 현황 및 실태에 대한 답변 자료’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오히려 “구두양해 이후 중국 측은 문제가 되는 사안에 시정 조치를 취했다”며 구두양해가 잘 지켜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정부가 중국의 치밀한 역사 왜곡 연구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 정치적 외교적 대응 사실상 전무?
정부는 구두양해 이후 동북공정 문제에 대해 정치적 외교적 대응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04년 9월 ‘범정부 고구려사 왜곡 대책팀’을 만들고 산하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통상부와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외교전략팀’ 등을 뒀다.
하지만 국무조정실 답변서에 따르면 외교전략팀의 경우 지난해 1월과 8월 구두양해 이행 현황 점검 등을 주제로 2차례의 회의만 개최했을 뿐 활동 실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7일 선양(瀋陽) 주재 총영사관은 현지의 고구려 산성인 봉황산성에 중국 측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안내판을 세운 사실을 확인하고 외교부에 보고했지만, 외교부는 중국 정부에 항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는 그동안 “고구려사 왜곡이 있는지를 파악해 필요 시 관련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해 발표했다.
○ “정부, 동북공정 은폐 의혹”
김 의원은 “정부가 사태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동안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중국의 동북공정 진행 과정을 알면서도 숨기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지난해 9월 이번에 발표된 문제 논문들의 연구계획 요지를 입수했다는 얘기도 나오는 만큼 정부의 은폐 의혹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의 답변 자료에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이 동북공정의 주관 기관이라고 명시돼 있고, 왜곡 논문들은 이미 지난해 발표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일찍부터 이를 알고 있었을 개연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