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中 ‘휴전’ 말만 믿다 뒤통수 맞아

  • 입력 2006년 9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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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휴업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사무실. 최근 이사장만 임명된 뒤 후임 인사와 연구원 선발이 이뤄지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다. 신원건 기자
개점휴업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사무실. 최근 이사장만 임명된 뒤 후임 인사와 연구원 선발이 이뤄지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다. 신원건 기자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邊疆史地) 연구중심(변강연구센터)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내년 2월 종료를 앞두고 그 실체를 뚜렷이 드러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고구려만이 아니라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역사 전체를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것.

발해사 침탈은 고구려의 계승 국가라는 점에서 동북공정 초기부터 문제가 제기됐다. 고조선 침탈은 변강연구센터가 2003년 출간한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속론’에서 확인된다. 이 책은 고조선과 고구려 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공통 후손을 뜻하는 염황(炎黃)씨족에서 유래했으므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또한 동북공정의 핵심 연구자들은 한민족을 남부의 한족(韓族)과 북방의 예맥족(濊貊族)으로 분리한 뒤 고조선-부여-고구려를 예맥족 국가, 신라-고려-조선을 한족 국가로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난해 9월부터 변강연구센터 홈페이지에 그동안 진행된 18개 연구 과제를 요약해 올려놓은 것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동북공정의 총체적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고구려사 하나에만 매달려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중국은 더 큰 그림을 착착 그려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2004년 8월 고구려사 문제에 국한해 이를 정치문제화하지 않고 민간 차원의 학술 토론으로 풀어 간다는 한중 외교부 간 5개항의 구두합의만 굳게 믿어 왔다. 정부는 이를 현상 동결이라고 주장했으나 동북공정은 이미 고조선 부여 발해사까지 넘어간 상황이었다.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은 정부의 이런 태도를 놓고 “수도(역사교과서 개정)만 뺀 전 국토가 유린당한 상황에서 침략군의 휴전 약속만 믿고 침략당한 영토 수복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고구려연구재단을 대체할 우리의 동북아역사재단은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항할 연구기관으로 2004년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은 지난달 해체됐다. 중국과의 고대사 문제뿐 아니라 일본과의 근현대사 문제와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종합적 국책연구기관으로서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흡수 통일된다는 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8월 20일경 출범 예정이던 동북아역사재단은 1일 이사장만 임명했을 뿐 아직 현판식도 열지 못했다.

게다가 재단의 무게중심이 중국보다 일본으로 기울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장에 임명된 김용덕 서울대 교수는 일본사를 전공했고 역사연구실 산하 중국 관련팀은 1개 팀인 반면 일본 관련팀은 2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05년 3월 김병준 당시 대통령정책실장이 단장을 맡아 출범했던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기획단’을 사실상 확대 개편한 조직이다. 또 이 재단을 외교통상부와 교육인적자원부 중 어디 산하에 두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해를 넘겨 5월에야 교육인적자원부로 가는 것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1년여에 걸친 이 과정에서 고구려연구재단과의 위상 정립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신분 불안을 느낀 연구 인력의 동요를 초래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학계에서는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동북공정에 대한 수세적 대응을 하루빨리 공세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지키기의 차원을 넘어 여진-거란-몽골의 역사까지 한민족과 공동의 문명사적 스펙트럼으로 확장하는 한국판 ‘북방공정’을 의미한다.

강우방(미술사)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6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개막된 ‘요하문명전’은 중국이 문명의 기원으로 한반도와 만주에 이르는 랴오허(遼河)문명까지 훔치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데 국내 학계에선 이에 대해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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