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 헌]盧대통령의 ‘말폭탄’ 日人들도 귀닫아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일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소식이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고교생 딸의 쌍꺼풀 수술을 위해 도쿄(東京)에 있는 필자의 병원을 찾은 중년 일본 여성에게서 노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 얘기를 들었을 때가 그랬다.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잘 아는 여성이 말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정말 성형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없는 모양이죠. 한국 대통령이 인상을 바꾸기 위해 일부러 성형을 한 것 같던데요.”

성형외과 의사이긴 하지만 나는 성형수술의 남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로 인해 한국은 마치 성형수술이 만연하는 듯한 이미지가 일본에 퍼진 듯하니…. “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만약 무언가 외과적 수술을 했다면 근력 저하나 그로 인한 시야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의학 전문용어를 섞어 가며 군색하게 노 대통령을 변호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네오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침략의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군비 증강 등 군국주의로 회귀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일본의 전통과 품격’ 등을 소재로 한 책이 조명을 받는 등 애국주의가 넘친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 등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행보가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 한국의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반대로 일본인은 노 대통령을 통해 한국을 인식한다. 쌍꺼풀 수술도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쏟아 내는 발언이 일본 사람의 대한(對韓)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진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일본인이 싫어해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과거사 왜곡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막무가내로 가는 일본 정치인이야 그렇다 치고, 일본의 보통 사람이 듣고 되새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할 수는 없는가.

우리에게 작은 이웃 나라가 있고, 그 나라 총리가 ‘한국의 도발을 막아낼 국방력’이라는 등 한국에 대해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강경 발언을 한다고 할 때 한국 사람은 기분이 어떨까.

노 대통령 취임 초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전후 세대’인 한국의 새 대통령에 대한 신선한 기대가 있었다. 그랬던 일본 지식인의 상당수가 지금은 노 대통령을 치지도외한다. 노 대통령이 무슨 발언을 해도 반응이 없다.

고이즈미 정권의 우경화에 비판적인 이곳의 주류 언론들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중국과 한국 등이 반대하는’ 이라는 말을 수식어처럼 붙였다. 필자가 과민해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들어서는 그 표현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반대하는’이라는 것으로 바뀐 경우를 종종 접한다. 이제 노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 전체가 치지도외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 헌 일본 도쿄 아시안미용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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