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 외교관은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서프라이즈(놀라는 일) 없이 끝나는 게 베스트”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양국 실무진은 대북제재 문제 등 ‘뜨거운 감자’는 회담 의제에서 뺐고 공동성명 등 공동문서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회담을 열기도 전에 ‘알맹이 없는 회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늬만 정상회담=통상 정상회담은 양국 간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이견을 조정해 큰 원칙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다. 외교 당국자들은 그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부분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가장 중요한 현안을 둘러싼 이견은 덮어둔 채 이미 사실상 합의를 한 사안만 다시 논의하는 꼴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대북제재를 적극 추진 중이고, 한국은 ‘제재가 만병통치는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놓고도 회담에선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협의를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로 미루기로 했다. 이미 양국 정부가 합의한 전시작전권 환수 원칙만 재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한 외교관은 “회담에서 공동문서를 도출하려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견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될 것 같으니 포기한 것”이라며 “미국 측이 이견 조정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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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성격이 변수=이번 회담은 세 단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먼저 50분 동안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를 논의한 뒤 10분 동안 기자들을 접견하고, 1시간 동안 식사를 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벌써 대북제재 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로 했지만, 두 정상의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의 관례상 상대편에게 특정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각자 자기 논리를 펴면서 간접적으로 상대편의 책임을 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6자 회담을 벗어난 북한과의 양자대화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만약 노 대통령이 ‘미국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할 경우 갈등이 불가피하다.
특히 노 대통령이 최근 핀란드에서 발언한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은) 미국까지 가기는 너무 초라하다”는 식의 의견을 표명하면 부시 대통령도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북핵 문제 등을 놓고 서로의 소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압박 문제를 거론했고,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팔을 잡는 친근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며 반박 논리를 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결국 서로 상당한 이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노 대통령이 회담 말미에 “그러니까 양국의 생각이 다르지 않군요”라며 분위기를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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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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