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는 당내 강경파에 밀려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나 대통령의 지명철회 때까지 강공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입장이지만 은근히 다음번 국회 본회의일인 '19일' 이후의 파장을 걱정하는 눈치다.
특히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14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또다시 무산되면서 헌재소장 공백사태가 현실화되고 소야(小野) 3당의 중재안을 수용한 여권이 '한나라당 고립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대응책 마련에도 애쓰는 모습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여당과 야3당의 공조 움직임을 겨냥해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국회가 정치적 담합으로 눈감아 준다고 해결될 수 없다"며 "19일 국회 본회의는 긴박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빠짐없이 출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은 야 3당이 8일 전 후보자에 대한 본회의 인준표결 불참 방침에 동조할 때까지만 해도 이번 사태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는 듯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야 3당 중재안을 거부한 반면 여권은 이를 수용하자 분위기가 '여당+야3당'쪽으로 반전하면서 '고립무원'에 빠질 처지에 놓이게 된 것.
여기에 초유의 헌재 공백 상황을 야기했다는 비난여론을 뒤집어쓸 공산이 큰 데다 한나라당에 유리한 작금의 '여론'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첫 여성 헌재 소장 탄생에 반대했다'는 여성계의 반발도 부담되는 대목이다.
당 일각에서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온건론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다. 야 3당과의 일시적 공조가 깨지면서 '회군'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타협론도 확산되고 있지만 강경론자들의 주장이 워낙 강해 세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설령 지도부가 추후 적당한 명분을 찾아 청문회에 응한다고 해도 "명분과 실리를 다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두고두고 당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당 대표가 직접 나서 별다른 대안 제시를 통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데 있다. 소위 '말발'이 먹히지 않는 탓이다.
실제로 강재섭 대표는 12일 "계속 반대만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청문회를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 봐야 한다"며 유연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그의 발언 내용은 최고위원 중진연석회의를 거치면서 몇 시간 만에 '없었던 일'로 됐다. 취지가 와전됐다는 강 대표의 해명이 있었지만 외견상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문제가 당내 복잡한 역학구도와 미묘하게 맞물려 있는 것도 해법 도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강경론자의 중심엔 7·11 전당대회 때 강 대표와 맞붙었던 이재오 최고위원이 있고 주변으로 이 최고위원과 성향이 비슷한 전재희 정책위의장, 이방호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강 대표와 가까운 전여옥 최고위원이나 주호영 공보담당 원내부대표 등도 있지만 이번 문제를 강 대표와 이 최고위원 간의 은근한 '기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당에 구심점이 없어 헛바퀴를 돌고 있다. 뭔가 하나 빠졌다"고 지도부를 비판한 뒤 "지도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상식과 원칙에 안 맞는 것 아니냐. 합의할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