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회담이 시작될 때부터 워싱턴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다만 한국 정부의 핵심 실무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 회담을 끝낼 것 같지는 않다”며 “각각의 현안에 대해 양국 실무진 사이에 협의된 내용을 모두 보고했고 이를 대통령이 어떻게 요리할지는 본인 이외엔 아무도 모른다”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 문제를 제외한 의제들에 대해선 예상 밖의 새로운 논의를 전개하기보다는 기존에 진행돼 온 논의들을 재확인하고 힘을 실어 주는 방향으로 회담을 진행했다.
예상대로 두 정상은 “전시작전권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요구를 미국도 지지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공식 확인하는 수준에서만 이 문제를 다뤘다.
청와대는 회담 후 “두 정상은 전시작전권 전환은 한국군의 능력에 대한 양국의 신뢰를 기초로 해서 미국의 주한미군 지속 주둔 및 유사시 증원 공약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는 것으로서 이는 동맹의 공고함과 성숙함을 보여 주는 것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은 전환 시기 등 구체적인 사항은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또 “두 정상은 주한미군 조정 및 재배치 사업을 원활하게 이행하며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을 바탕으로 군사지휘관계 로드맵을 작성해 온 데 대해 만족을 표시했다”고 발표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억지력의 유지’는 지상군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풀이된다. 미군의 세계적 재배치 및 구조조정에 따라 해·공군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전력을 재편할 여지를 남겨 놓으면서 전체적인 대북 억지 전력에 있어서는 차질이 없게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미 FTA에 대한 한국 정부의 추진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도 “한미 FTA가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은 한미 FTA가 양국 관계를 한 차원 격상시키는 방안이라며 FTA 체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양국 간 견해차는 협상을 통해 원만히 해결해 간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각론에서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 두 정상은 “한국이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양국 간의 교류 및 상호이해 증대를 통해 한미 관계가 더욱 발전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법령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한다”며 한국이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빨리 가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反美운동 1세대 박선원 비서관 배석-대북 강경론자 체니 부통령 불참
우선 눈에 띄는 사람은 한국 측 배석자 7명 중 박선원(43)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연세대 82학번인 그는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내던 1985년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울시내 대학생 70여 명은 문화원을 점거한 뒤 “광주사태의 배후 미국은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이는 1980년대 반미운동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박 비서관은 이후 영국 워릭대에 유학해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고, 연세대 연구교수를 거쳐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에 합류했다.
결국 박 비서관은 21년의 세월을 거치며 학생 반미 운동가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배석자로 거듭난 것이다.
눈길을 끈 불참자는 미국의 강경한 한반도 정책을 주무른다는 딕 체니 부통령이었다. 그는 12일까지만 해도 참석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13일 갑자기 “부통령실 사만사 러비치(여) 안보보좌관이 대리 참석한다”고 통보해 왔다. 체니 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오찬에만 참석했다.
체니 부통령의 정상회담 불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도 참석 여부를 확정짓지 않다가 막판에 ‘지방 출장’을 이유로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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