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작년 경주회담때 盧대통령, 부시 달달 볶아”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회담장 주변에서 마주친 한국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한미 갈등의 핵심 현안인 북한 제재 문제 등은 테이블에 올리지도 못했는데 왜 긍정적으로 자평하는 걸까. 미국 언론도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열렸던 경주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도대체 경주에선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서울과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간 대북인식의 차이는 실무자 차원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생각 차이”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6자회담이라는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는 것 같다고 몰아붙였을 뿐만 아니라 9월부터 시작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북한계좌 동결이 6자회담의 장애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백악관 참모에게 “공개석상에서 수차례에 걸쳐 북한 정권교체 및 무력사용 의사가 없다는 점을 밝혔는데도 왜 한국의 대통령은 내 말을 못 믿는가”라며 불쾌함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양국 대통령과 참모들은 모두 넥타이를 풀고 회견장에 나타났었다.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연출’이었지만 실제 회담분위기는 전혀 딴판이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경주 정상회담이 열린 그날 열린우리당에서 “이라크 자이툰 부대원 900명을 뺀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윤광웅 국방장관의 당정협의 보고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백악관은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의문을 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도 15일 이번 워싱턴 회담 결과를 소개하면서 “지난해 경주에선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달달 볶았다’(privately grilled)”고 전했다. 이 신문은 자이툰 부대건에 대해선 한국이 백악관을 ‘난처하게 했다’(embarrassed)고 표현했다. 실제 그 당시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머물던 경주 현대호텔 프레스센터에서는 일부 미국 방송사 기자들이 “백악관이 정치적으로 타격(setback)을 입었다”는 내용을 녹음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이 ‘공통점 부각’에 초점을 맞춘 것도 경주의 교훈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는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정부 실무자들이 ‘1년에 한번은 미국 정상을 만나야 하고 지난해 응어리를 푸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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