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은 왜 말이 없나…“인준 되더라도 권위 서겠나”

  • 입력 2006년 9월 19일 03시 03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자신의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무산된 8일 이후 18일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도 “헌재의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해서는 전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전 후보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13일 지명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챙기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이 전 후보자 스스로 거취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1차 계기였으나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권 주변의 정황을 종합해 보면 전 후보자는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는 듯 보인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전 후보자가 청와대에 사퇴 용의를 밝혔다거나 청와대가 전 후보자에게 사퇴를 권유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건이 전 후보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 후보자가 자진 사퇴해야 이번 파문이 해결될 것이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진 사퇴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 후보자가 이미 헌재소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전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청와대가 잘못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전 후보자 스스로도 청와대의 페이스에 말렸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과 이론적 엄격성을 갖춰야 하는 헌재소장의 요건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헌재 재판관 가운데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의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전 후보자의 소장 임기 6년 보장을 위해 헌재 재판관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전 후보자에게 재판관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청했다.

전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전화로 헌재소장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헌재소장) 임기와 관련해 (헌재 재판관) 사직서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해 사퇴했다”고 말했다. 전 후보자는 나중에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사퇴한 게 아니라 (정부의) 시스템을 통해 전달된 의사에 응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3년간 헌재 재판관을 지냈고 헌재소장이 될 사람이 민정수석의 전화 한 통화에 법률적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사퇴서를 내 논란에 휘말렸다는 것 자체가 헌재소장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지명 과정의 위헌 가능성을 지적하자 전 후보자는 ‘문제없다’는 취지로 답변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을 시인함으로써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위헌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헌재소장 후보자가 헌법상 절차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 결함이라고 지적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헌법에 위배되는 임명 절차를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해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헌재는 차기 소장 임기 6년 내내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전 후보자 개인의 처지에서 보면 ‘불명예 퇴진’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도 “전 후보자로서는 20년이 훨씬 넘게 쌓아 온 법관의 명예가 실추된 측면도 있을 테고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전 후보자의 편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19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 후보자는 ‘기약 없이’ 헌재소장 후보자로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자진 사퇴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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