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14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의 대북 제재에 노무현 대통령 등 정부가 대응한 결과에 대해 청와대와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상반된 증언 및 해명이 나오면서 내부 갈등까지 빚어지는 양상이다.
▽엇갈리는 세 사람=노 대통령이 회담 전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 얘기를 놓고 이태식 주미대사와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혀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이 대사는 18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A4용지 2cm 두께의 회담 관련 발언록을 들춰보며 노 대통령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조사의 조속한 종결을 요청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송 실장은 19일 한국언론재단 오찬 포럼에서 노 대통령이 BDA 은행 조사 속도 등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조사를 조기에 종결하라는 뜻의 얘기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명시적인 조사 조기 종결 요청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또 정부가 미국 측에 대북 추가 제재 방안 발표를 회담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는지에 대해 이 대사는 자신이 직접 미 재무부 국무부에 요청한 사실을 시인했다. 송 실장은 “정부는 제재 문제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회담 훨씬 이전에 (한미) 당국자들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라며 애매하게 말했다.
그러나 윤 대변인은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청와대는 왜 부인하나=이 대사가 발언록까지 확인하며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특파원들에게 전했는데도 청와대는 전면 부인했다.
이 대사가 외교통상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33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없는 말이나 사실을 꾸며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외교부 내부의 평가다.
그렇다면 이 대사의 경력과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송 실장과 윤 대변인을 통해 이 대사의 발언을 적극 부인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정부 내엔 노 대통령이 폴슨 장관에게 BDA에 대한 조사 조기 종결을 요청한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북측의 편에 서서 미국과 대립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청와대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대북 제재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노 대통령이 조사 조기 종결 요청을 했는데도 폴슨 장관이 “알았다”고만 하고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가 곤혹스러워 한다는 분석도 있다. 폴슨 장관은 1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북한의 불법금융 활동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또 폴슨 장관과의 접견 직후 윤대희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밝힌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다른 증언이 나오자 청와대가 당황해 일단 부인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포괄적 접근방안에 자신이 없어서’=이 대사는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미국의 대북 제재 방안 발표 시점을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는데도 윤태영 대변인은 정부가 미국에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 배경을 놓고 정부 안팎에선 청와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했다고 밝힌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추진하는 데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 방안이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려면 한미 간에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강도를 줄이기 위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추가 대북 제재 추진 방침을 분명히 하자 민감해진 상태에서 정부가 대북 제재 유예 요청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부인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정부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이 대사의 발언 내용을 전해 듣고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청와대는 이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태식 주미대사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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