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탈북자가 걱정하는 나라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우리는 북에 있을 때 남조선에서 미군만 나가면 우리 힘으로 남조선 괴뢰군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어제 국방부 앞에서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미군 철수로 이어질 전시작전권 환수 추진을 “망국의 조짐”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북의 현실이 남한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북을 탈출한 이들의 눈에 남한의 안보현실이 얼마나 불안하게 비쳤으면 이런 걱정까지 할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7년 망명 이후 남한 사회의 안이한 안보의식을 자주 질타해 왔다. 그는 4일에도 자유북한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전시작전권 문제를 자주와 연결시켜 한미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자들은 민족반역적인 행동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정부로선 듣기 거북하겠지만 황 씨가 무슨 다른 욕심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역시 남한의 안보상황을 그만큼 위태롭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정문헌 한나라당 의원이 작년에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의 38%는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이 작년 3∼7월에 퇴소한 275명을 상대로 정착 희망 국가를 조사했더니 한국 56%(153명), 중국 22%(61명), 미국 9%(25명), 일본 4%(10명), 북한 3%(9명)로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이 탈북자들에게 더는 ‘이상향(理想鄕)’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최근 한국 대신 미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6·25전쟁 때 월남한 이북 출신 중에는 성공한 사람이 많다. 남보다 몇 배 노력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그들에게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미래를 탈북자들이 걱정하게 됐으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한숨이 나온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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