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전효숙 강공' 속 출구찾기 고민

  • 입력 2006년 9월 20일 15시 13분


"우리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전효숙 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강경기류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점점 강경해 지는 분위기 속에 당 지도부는 연일 "누가 이기는지 끝장을 보자"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20일 당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자신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전 후보자와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계속 압박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법률적으로 한치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는 절차적 문제와 전 후보자가 과연 헌법을 공정하게 지킬 수 있는 분인가 하는 개인적 문제 등 두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라며 "앞으로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강력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 사태를 유발한 측에서 해법을 제시해야 하며 노 대통령은 국정마비 사태를 조속히 풀기 위해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지금처럼 그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절차적 하자뿐만 아니라 이미 상처 날 대로 상처 난 전 후보자는 헌법을 수호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으로서도 이번 사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바라고 있으며,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지도부와 각을 세워왔던 소장파 의원모임 '수요모임'의 대표인 남경필 의원도 "이쯤 되면 전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며 모처럼 지도부와 '코드'를 맞췄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강경기조를 보이는 것은 이번 사태가 후보지명 공방에서 여야간의 정국 주도권 싸움으로 비화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어정쩡하게 물러섰다가는 정기국회 내내 여당에 끌려 다니는 것은 물론 자칫 당이 '내홍'에 휩싸이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가 전 후보자 지명의 절차적 하자를 끈질기게 거론하며 소야(小野) 3당의 지속적인 협조를 부탁하는 동시에 언론과의 접촉을 강화하며 대국민 선전전에 본격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한나라당만큼 여당과 청와대의 입장도 강경해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비교섭 3당이 한나라당의 '마이웨이'식 정치에 실망, 열린우리당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확연한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당과 소야 3당 내지 일부 야당의 공조가 현실화되면서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졸지에 '외톨이'가 되면서 국정 파행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남 출신 재선의원은 "지금까지는 그렇다 쳐도 지도부가 이제는 '퇴로'를 열어놓고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며 "청와대가 국회 법사위에 헌법재판관 인사청문안을 정식으로 제출하면 절차상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수도권은 3선 의원은 "계속 강경일변도로 나가면 우리가 명분과 실리에서 모두 질 수도 있다"며 "앞으로 상황변화에 따라 전략수정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열린우리당, 전효숙 임명안 이달중 표결 재시도

열린우리당은 세 차례 본회의 상정이 무산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이달 중 본회의를 다시 열어 표결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이 전효숙 후보자의 자진사퇴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표결을 통한 정면 돌파를 위해 소야(小野) 3당 설득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국회 본회의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의장석 점거로 개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유회되면서 국회법상 매일 오후 2시 본회의가 자동 소집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다음달 11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앞서 국감 계획서 채택을 위해서라도 이달 중 본회의 개최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20일 KBS와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사청문특위에서 사흘이 지나도록 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할 수 있고, 지금은 본회의가 유회돼 있기 때문에 의장이 여건이 되는 대로 본회의 일정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상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149석)를 채우기 위해서는 소야 3당 중 일부만이라도 협조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섭단체에 대한 설득을 강화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전날 소야 3당의 중재안을 전면 거부하고 전효숙 후보자 개인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물리력으로 임명안의 본회의 상정을 막은 것을 계기로 소야 3당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고 보고 소야 3당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회의에서 "헌재소장 임명동의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이 어제는 절차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고 전효숙은 무조건 안된다며 본색을 드러냈다"며 "후보자의 적격 여부는 인사청문회에서 검증하고 표결로 말하는 게 헌법과 법률의 요구"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중재노력을 기울여온 야 3당도 한나라당의 일당 횡포, 오만과 독선 앞에 무기력하게 끌려가서는 안 되며 오늘 중으로 분명한 입장정리가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우리가 그렇게 양보했는데도 한나라당이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전혀 타협하지 않는 오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여당이 법적 하자에 대한 확실한 보정조치를 취한다면 여당 쪽으로 가서 (임명안을) 처리해야 하고, 여당과 야 3당의 처리도 합의 처리로 볼 수 있다는 의견들이 있다"며 당내 기류가 임명안 표결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내비쳤다.

임채정 국회의장도 한나라당이 소야 3당의 중재안을 전면 거부하고 나섬에 따라 비교섭 3당이 여당과 함께 표결에 응할 경우 직권상정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날 소속의원 명의의 결의문을 통해 "전효숙 후보자 임명안은 사실상 폐기됐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여당의 재상정 및 표결 처리 시도 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열린우리당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한나라당의 민주당에 대한 공조 제의와 관련해 "민주당이 정치적 매춘행위를 하니까 수구정당이 민주당을 탐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 임명안 정국에 돌발변수가 될 지 주목된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민 위원장 발언에 대한 논평에서 "열린우리당은 정치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망발을 한 민 위원장의 당직을 박탈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며 "지난해 여름내내 정권을 통째로 줄테니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하자고 애걸복걸했던 열린우리당이 남을 욕하고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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