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미국 노틸러스연구소 웹사이트에 게재된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담당관의 글 ‘추락하는 토끼(Wabbit in Free Fall)’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었다. 노틸러스연구소는 특히 북한의 핵 및 에너지 사정에 밝은 동북아 안보전문 민간 싱크탱크로 유명하며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있다.
연구소 측은 이 글을 게재하면서 “칼린 씨가 강 부상이 지난여름 평양에서 열린 북한 외교관들 모임에서 말한 연설 내용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칼린 씨도 서두에서 “체코 프라하 소인이 찍힌 봉투를 받았는데 그 안에 강 부상의 연설 내용을 적은 한글 수기(手記)가 들어 있었다”고 썼으나 누가 보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이 글은 이달 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스탠퍼드대와 브루킹스연구소가 합동으로 개최한 정책 토론회에서 칼린 씨가 ‘김정일의 국내외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이었다. 원고에는 이 글이 픽션임을 밝히는 별도의 안내문은 없었으나 이를 발표하는 칼린 씨의 어투와 미국 만화를 인용하는 대목 등으로 인해 상당수 참석자들은 별 무리 없이 창작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한 한국인 학자는 “강석주 부상의 진짜 연설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야 ‘창작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간이어서 이 토론회는 한국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노틸러스연구소의 피터 헤이스 국장은 25일 본보 워싱턴 특파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풍자적 논평(satirical commentary)이었지만 유창한 영어 구사자마저 그런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노틸러스연구소는 이 글이 한국 신문에 보도된 후인 25일 이 글의 서두에 “강 부상을 대리하는 가정적 연설(hypothetical speech)” “북한 관계자의 실제 연설이 아니다(not a real speech by the DPRK official)”는 내용을 추가해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그러나 헤이스 국장은 본보 특파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글 자체는 최고의 북한분석가가 쓴 상당히 진지한 글이다. 평양과 서울에서 진지하게 읽어야 할 글”이라고 평가했다.
필자인 칼린 씨는 본보에 보낸 e메일에서 “오보(mis-reporting)를 둘러싼 혼란 탓에 좀 더 중요한 것을 경시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북한이 어떻게 외부의 행동과 말을 인식하는지 사람들이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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